지령1000호 기념 역대 편집장 릴레이 기고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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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1000호 기념 역대 편집장 릴레이 기고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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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31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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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편집장 우세관 교무(강원교구 김화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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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신문 지령 1000호에 부쳐

#1. 행사가 끝난 어느 날 서울회관. 소식지로서의 임무를 마친 한울안신문 수십 장이 미처 챙겨가지 못했는지 나뒹굴고 있었다. 구겨진 것, 찢어진 것 한장 한장을 펴서 가지런히 모으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밤 늦게까지 원고를 다듬고 다듬고, 사진의 위치를 바꿔가며 편집했던 인쇄물이 내겐 자식과 같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2. 원기80년 교구자치제와 더불어 창간된 서울교구 소식지였던 한울안신문. 당시 교구장님이셨던 경산 종법사님의 결단과 초대 편집장이었던 정성길 교무의 의지가 없었다면 한울안신문은 탄생 자체가 없었을지 몰랐다. 편집장, 취재기자, 편집기자 단 3명으로 주간 신문이란 언론의 역할을 다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하지만 단순한 지역 소식지를 넘어 교구 교화와 교법 외, 교단적 과제까지 담론을 확장하며 교단 언론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우리는 열정을 바쳤다.

#3. 교구 신문이란 한계를 가지며 창간되었지만 저널리즘의 형식을 갖추면서 한울안신문은 교단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외연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가톨릭신문이 천주교 대구교구 신문으로 출발한 것과 동류라 여겨진다.
이어 원불교신문과 월간원광 단 2개 밖에 없었던 교단의 언론은 격을 갖춘 한울안신문의 탄생으로 서로에게 자극이 되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음방송은 거교적인 결의로 탄생하게 되었지만 이같은 언론의 지평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평해도 무리는 없겠다.

#4. 2대 편집장의 소임을 맡은 기간 한울안신문의 컬러판과 12면 증보가 이루어졌다. 증면에 따른 광고 확대로 자립 경제와 더불어 인쇄를 제외한 신문사로서의 모든 시스템을 갖추어 갔다. 물론 이 과정에는 교도님들께서 카메라를 비롯해 필요한 기자재를 희사하고, 교구 교무님들의 취재 및 재원 협력까지 보이지 않는 물심양면의 노력이 기반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5. 한울안신문의 탄생은 교구자치제 하의 서울교구 위상과 격을 높였으며, 교구 교화의 한 축을 담당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신문을 통해 교구의 정책과 교화의 융합으로 잉여 가치를 양산해 내었고, 다양한 활동과 가치, 교도들을 하나로 견인해 내었다. 단위 교당에서 부족하거나 놓친 교법은 참여한 많은 이들의 합력으로 틈새를 메꿔 균등하게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고, 사업의 도약과 전진을 위한 아이디어 뱅크로서의 역할도 충실했다고 본다.

#6. 주간지 지령 1000호란 감격을 맞은 한울안신문은 앞으로도 교구와 교단의 사관 역을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 거교적으로 본다면 한울안신문의 역할에 대한 평가로 3-5개의 교구 신문이 더 탄생하여 지역사회의 교화를 더욱 튼튼히 하는 계기가 되길 원한다. 아울러 한울안신문 자체적으로는 증면 및 기자 확충으로 단위 교당의 소식과 교화를 더욱 심층 취재한 기사가 많아졌으면 한다. 또한 교구와 교단의 각종 정책에 대한 문제 진단과 방향을 제시하는 언론 기능을 강화했으면 한다. 온라인 뉴스와 포털 원티스에 기사 서비스는 당연한 기대이다.

#7. 한울안신문은 이름처럼 교구와 교단, 세계를 하나로, 한울안으로 만들어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방언공사의 후예임을 명심한 제작진의 혈심과 사대 불이신심을 새기는 독자들의 사랑이 계속 되어주기를 바란다.
한울안신문의 연륜은 대불사 봉행에 다름이 아니다. 원불교 100년대를 열어가는 한 축으로 함께 혈성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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