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행] "평화와 화해의 길을 걷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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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행] "평화와 화해의 길을 걷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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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02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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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평화와 화해의 길을 걷다(3)"

일본은 전쟁을 시작하면서 부족해진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약 150만 명의 조선인들을 강제연행했다. 조선인들은 일본 전역에서 탄광, 군수공장, 군사시설, 위안부 등 가혹한 노동조건 속에서 혹사당하며 죽어 나갔다.
그들은 50도가 넘는 탄광 가장 깊은 곳에서 짐짝처럼 취급받으며 배고파 죽고, 맞아 죽고, 무너져 죽고, 숨 막혀 죽고, 고향을 그리워하다 죽었다.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팻맨'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강제징용 당한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의 목숨 또한 한줌의 재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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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원폭 희생자 추모비'에 헌주를 올리는 청년

#위령
우리는 순례 기간 동안 총 3곳의 조선인 위령비를 찾았다. 첫 번째는 첫 날 보았던 오다야마 묘지의 '조선인조난자위령비'.
두 번째로는 타가와시(市) 석탄역사박물관 뒤편에 있는 '한국인징용희생자위령비'이다.
고쿠라에서 나가사키로 떠나며 들린 타가와 석탄역사박물관은 구 미쯔이 사(미쓰비시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전범기업)의 탄광이 있던 자리였다.

눈앞에 보이는 철제수직 갱탑과 거대한 굴뚝들. 우리가 디디고 서있는 이 땅 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박물관 뒤편 미쯔이다가와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세워져 있는 '한국인징용희생자위령비'는 평생을 가장 어둡고 낮은 탄광에서 일해 온 이들에게 죽어서나마 가장 높은 곳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재일동포들이 기부금을 모아 세웠다고 한다.
기도 후 뒤를 돌아보았을 때 파란 하늘 아래 색색의 보도블록으로 정비된 그 땅 위에서는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 모습을 보면서 '이곳에 묻힌 이 분들은 무슨 심정으로 이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마지막 나가사키 평화공원 바깥 공중화장실 옆에 초라하게 있는 '조선인원폭희생자추모비', 일본 정부가 먼저 세운 비석은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 한국 정부가 세워준 비석도 없다. 이 역시 재일동포들과 소수의 일본 인권운동가들이 힘겹게, 힘겹게 세운 것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던 날, 깨끗한 물로 비석을 씻고 한국에서 챙겨온 소주를 흩뿌리며 우리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을 흘려보냈다.

#평화의 탈을 쓴 폭력
1941년 12월, 일본은 미국을 향한 '진주만 공습'을 통해 제2차세계대전을 알리는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기나긴 전쟁 끝에 1945년 8월 9일,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곳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당시 일본에 강제징용이나 이주 등으로 머물고 있던 조선인들도 원폭 피해를 고스란히 당해야만 했다. 수만 명이 죽었고, 살았다 한들 대다수는 원폭후유증과 빈곤,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나가사키시(市)는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고 그때의 참상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써 원폭자료관과 평화공원을 조성했다. 하지만 그 자료관과 공원 어디에도 일본의 전쟁 주체로서의 역사와 가해자적 입장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철저히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만이 있었다. 청년들은 과연 이곳은 추모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 맞는지, 누구를 위한 추모인지 생각하며 참담한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평화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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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마사하루 평화기념관' 안, 설명중인 기무라 선생님 (1003호 4page, 특집기행 '목사'에서 '선생님'으로 정정)

이와는 반대로 '국립 나가사키평화기념관'과 훨씬 떨어져 있는 어느 주택가 언덕 입구에는 스쳐 지나가면 전혀 모를 '오카마사하루 평화자료관'이 있다. 故오카마사하루 목사(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대표)의 유지를 계승하여 지어진 곳으로 일본이 당시 아시아 지역에 자행했던 전쟁, 고문, 강제노역, 위안부 등의 사건들을 후대에 알리고, 반성하며,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진 곳이다.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좁은 공간 속 벽면을 가득 채운 잔혹한 역사의 현장들. 일본 초등학생들의 편지와 종이학. 누구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왜곡된 역사의 후손이 되지 않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
그 공간 곳곳에 아려있는 그들의 노력과 진한 진심에 청년종교인들의 벌어진 고정관념의 틈에는 평화의 씨앗이 꼭꼭 심어지고 있었다.

우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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