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노래, 늙지 않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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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노래, 늙지 않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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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02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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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유행가」⑧ l 조휴정PD('함께하는 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혜화동'으로 가는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듣는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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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아름답다'고 하지만, 사실 그때가 꼭 아름다워서 그리운 건 아닙니다. 슬프고 힘들었던 일인데 세월은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동화처럼 예쁘게 포장해 주는거죠. 어쩌면 이렇게 추억 타령을 한다는 것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어떤 노래에서 20대를 떠올리시나요? 저에게는'원효로'가, '동물원'의 노래들이 메신저가 되어줍니다. 10대의 전부와 20대 초반을 보냈던 '원효로'.
서울인데도 어쩌면 그곳은 그렇게도 변하지 않았는지요. 그때 살던 육교 앞 2층 집과 엄마가 짜장면을 사주던 중국집도 그대로인 곳. 엄마가 월세만 밀리지 않았으면, 우리 집에도 전화가 있었으면, 가난하고 쓸쓸했던 그 소녀는 눈깜짝할 사이에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동물원의 '혜화동(1988년 1집, 김창기 작사 작곡)'친구들도 모두 중년이 되어있겠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것이 골목길뿐이겠습니까. 길거리에서 팔던 국화빵 하나도 그렇게 맛있었고 학교 앞 문방구는 그토록 화려했건만 우리는 더 많은 욕심과 욕망으로 웬만한 것에는 맛도 멋도 감동도 받지 못하는 속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언젠가 돌아오는 날 활짝 웃으며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대학을 가면서 뿔뿔히 흩어져버린 친구들. 만나자 했으나 아직도 만나지 못 한 그 친구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요? 우연히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1990년 3집, 김창기 작사 작곡)'에서 만난다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너를 다시 만났었지. 신문을 사러 돌아섰을 때 너의 모습을 보았지. 발 디딜 틈 없는 그 곳에서 너의 이름을 부를 때 넌 놀란 모습으로 그렇듯 더디던 시간이 우릴 스쳐 지난 지금 너는 두 아이의 엄마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지 나의 생활을 물었을때 나는 허탈한 어깨 짓으로 어딘가 있을 무언가를 아직 찾고 있다했지” 갑자기 만난 옛 친구, 특히 옛사랑과는 무슨 이야길 해야 하는 건가요? 그 짧은 시간에 두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바빴을까요? 두서없는 대화, 머릿속에 맴도는 수만 가지 생각들. 밀려드는 추억과 완전히 다른 현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너와 아직도 꿈을 찾고 있는 나. “가끔씩 너를 생각한다고 들려주고 싶었지만 짧은 인사만을 남겨둔 채 너는 내려야 했었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너의 모습이 사라질 때 오래전
그날처럼 내 마음엔”
두 사람은 서로의 연락처를 묻지 않은 채 헤어졌을 겁니다. 아는 거죠, 추억은 현실로 이어질 힘이 없다는 것을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예전에 무심코 선택했던 그 길이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는 것을.
가끔 실없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때 공부를 좀 열심히 했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그때 그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조금만 더 참았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때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꼬리에 꼬리는 무는 추억은 늙지도 않습니다.' 거리에서', '변해가네', '말하지 못한 내 사랑',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널 사랑 하겠어'등 동물원의 노래도 늙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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