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오피니언] 과거를 버리고 미래를 얻는 끝없는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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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오피니언] 과거를 버리고 미래를 얻는 끝없는 사유
  • 관리자
  • 승인 2016.12.0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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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소태산평전」작가)

『소태산평전』이 올해 신설된 제31회 만해문학상 특별상에 선정됐다.

만해문학상은 한용운 선생의 업적을기리고 그 문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73년 창작과 비평사가 제정한 상이다.
저자인 김형수 작가는 수상 소감을 통해 “개인의 차원을 넘어 인류의 절망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육신의 낱낱을 작동시킬 사상의 동력'이자 '미래 표상'이자 '운명을 구성할 기준이 되는 틀'을

고민하면서 소태산의 생애를 읽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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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황송했는지 모릅니다. 상극 투쟁의 잔해들이 가득 찬 땅에서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소태산의 제자들은 가을비 속에서 사드 반대투쟁에 온몸을 내맡기고 있습니다. 제게는 오랫동안 결여돼 있던 일들입니다. 거룩한 것은 늘 멀리 있고 저는 언제나 저잣거리에 위치했습니다. 교회도, 절간도, 선영도, 당산나무도 없는 삶. 그래서 자주 '주막집 아들!'을 자처했는데, 공교롭게도 제가 쓴 두 편의 전기는 모두 종교인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 정신은 문익환의 사상적 반려(伴侶)였다', '소태산은 후천개벽의 성자였다'하지만 기독교를 의식했다면 '문익환'을 알은 척하지 못했을 것이고, 원불교를 알았다면 '소태산'을 붙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영성의 궁핍을 무릅쓰고 감히 '진리'가 아니라 '매혹'을 추적한 발걸음이 여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스물두 살 때의 상처 때문이었어요. 1980년 5월 총소리를 들으며 경험한 '자아파괴'의 맥락 때문이었습니다. 거리의 나무들이 선 채로 죽어있고,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백년의 세월이 지나가버리는 이승의 몰락에 대하여, 마을이 부서지자 들숨 날숨을 유지하기가 곤란했던 그 무거운 시간들에 대하여 인간은 왜 이토록 오래 연민해야 하는 겁니까? '의식화 과정'도 없이 사회변혁운동에 뛰어들고, 그 길에서 만난 사람과 서적과 공기에 따라 NL이니 PD니 ND니 하는 노선들로 분화하고, '대동 세상'을 위해 일하자고 만난 사람들도 천 갈래 만 갈래 갈라서고.
인간의 목숨은 빈부귀천을 떠나서 모두 출생과 이별, 적막과 소란, 사랑과 권태와 죽음의 심연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습니다. 한번 솟구친 샘물처럼 생명은 장애물을 넘지 못하면 어디로도 흐를 수 없습니다. 방향감을 놓치면 사랑도 상처도 길을 잃습니다. 절망도 위기도 헤치고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끝없이 사유해 과거를 버리고 미래를 얻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종국에는 육신의 낱낱을 작동시킬 사상의 동력이자 '미래 표상'이자'운명을 구성할 기준이 되는 틀'을 고민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저는 한국사회의 질곡 속에서 19세기를 엿보았고, 변혁운동의 낱말로써 후천개벽을 접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때문에 미륵신앙을, 송기숙의 『녹두장군』때문에 동학의 농민들을, 김지하의 『남녁땅 뱃노래』때문에 수운과 해월과 증산을 동냥할 수 있었던 사실에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릅니다. 캄캄한 후학들에게 한 세계를 보여주고, 죽고 병들고 떠나버린 자리에서 저는 “폭력은 현실 안으로의 도피요, 신비주의는 현실 밖으로의 도피”라는 생각으로 소태산의 생애를 읽었습니다.
소태산은 만해 선생보다 열두 살 어립니다. 강증산의 후학이었지만, 만해 정신으로 불교혁신운동을 하던 백학명 스님과 연합전선을 꾀하다 제도화된 절간을 박차고 거룩한 세속으로 출가하여 불법연구회를 시작한 것이 오늘날 원불교에 이릅니다.
저는 감히 영광을 누릴 주제가 못 되지만, 만해 선생은 독서대중에게 관측되지 않은 이 고요한 성자를 결코 지나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상에 만해가 소태산에게 전하는 뜻이 담겨 있음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창작과비평』,
겨울/2016, 통권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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