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기르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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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기르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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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1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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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 작가의 ‘인문학으로 대종경 읽기’ 17-2 l 정법현 교도(북일교당)

일원진리를 보는 두 번째 관점은 양성(養性)이다. 양성이란 '성품을 기르다'이다. 성품이란 인간을 비롯한 만물이 이 세상에 등장할 때부터 본질적으로 갖는 어떤 성리(性理)를 말한다. 착한 마음이나 순종적인 태도를 성품이라고 여기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공자나 맹자를 비롯한 동양의 철학자들은 양성을 근간으로 사유를 전개했다. 인(仁)은 처음부터 인간에게주어진 것이 아니라 양성해야 한다고 공자는 끊임없이 가르쳤다. 그러다보니 논어에는 '인은 000이다.'라는 정의 자체가 없다. 경계에 따라 인의 내용이 끊임없이 변한다고 보는 게 공자의 견해다. 그러기에 양성에 힘을 쓰라고 하는 것이다.
서양 철학에는 양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서양 철학의 핵심은 '목적론적 존재(Being)'에 대한 탐구에 있고, 동양철학의 핵심은 '그렇게 되어가는 존재(becoming)'에 대한 성찰에 있다. 그렇게 되어 가기 위해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양성인 것이다. 서양철학에서는 존재가 이미 어떤 목적에 종속되었기 때문에 자아를양성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에 균열이 생긴 것은 계몽주의 이후의 근대철학에서였다. 서양철학도 마침내 자아를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양의 철학은 목적론적 절대주의를 추구했었다. 소크라테스의 '절대적 진리', 플라톤의 '절대선', 아리스토텔레스의 '좋은 삶(성공적인 삶)', 칸트의 '이성', 프루스트의 '진정한 삶', 헤겔의 '총체성(전체성)'등이 목적에 해당되는 철학적 개념들이다. 서양의 목적론적 철학에 대해 김용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서구인들이 말하는 삶의 의미는 진정한 삶의 의미가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을 순수하게 방치하지 못하고 그것에 반드시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논의는 기실 알고 보면 인간을 체제나 신화의 질곡 속에 예속시키기 위한 음모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은 중세기 토미즘(Thomism)에 전승되어 헤겔철학에까지 뻗쳐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설도 목적론적 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칼은 그냥 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베기 위하여” 즉 그런 목적을 구현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그런 목적을 구현하기 위하여서는 칼의 날이 매우 날카롭고 단단하여 잘 들어야 한다. 칼이 “뱀”의 기능을 최고로 잘 수행하는 그러한 성질을 “칼의 덕(德)”이라고 한다. 이때 “덕”이라는 말을 희랍어로 “아레떼arete”라고 하는데, 이것은 “탁월함”, “훌륭함 excellence”의 의미를 갖는다.(김용옥, <중용 인간의 맛>, 통나무, 2011년, 53쪽)

김용옥의 주장은 다소 과격하다. 하지만 눈여겨 볼 것들이 많다. “양성은 양심(養心)이다.” 양심이란 '마음을 기르다'이다. 이런 내용의 문장을 편지로 주고받은 선조들이 있는데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다. 그들이 그러한 편지를 주고받은 이유는 공맹이 마음에 관해 아주 많은 말들을 남겼고, 성리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으로 생애를 살아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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