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공간을 찾아서(2)]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 오랑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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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공간을 찾아서(2)]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 오랑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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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2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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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신문 우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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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태원, 화려한 간판들이 즐비하고,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도 바쁘다. 갈 때마다 바뀌어 있는 가게들은 항상 새롭다. 가슴을 둥둥거리게 하는 음악소리가 내 걸음걸음을 쫓아온다.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곳 보다는 조금은 더 사람냄새가 풍기는 곳을 좋아하는 나는 그 거리를 살짝 지나 녹사평역에서 용산2번 마을버스를 탔다.
“이번 정류장은 해방촌오거리 정류장입니다”
시끌벅적한 이태원 옆,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해방촌. 조용하다해도 이태원보다 조용하다는 것이지 이곳도 몇 년 전부터는 이색적인 분위기의 공방과 맛집이 많아 데이트코스로 유명하다. 항상 해방촌 아래 골목만 스치다가 가파른 언덕을 올라오니, 좁은 골목에 입구조차 찾기 힘든 재래시장이 나온다.

'신흐시장'. 아무래도 신흥시장인데 'ㅇ'자가 떨어진 것 같아 찾아보니 내 생각이 맞았다. 홀린 듯 이끌려 들어간 시장은 과거에 멈춰있는 듯 고요했다. 천장에 이어져 있는 슬레이트 지붕에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깜깜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따뜻함을 느낀 건 군데군데 달려있는 노오란 텅스텐 전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비어있는 이곳에 하나 둘 자리잡고 들어온 젊은 예술인과 지역활동가들의 노력 때문이었을까? 서울시는 이제 이곳을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할거라 선포했다.
이 도시재생의 중심에는 올해 초 오픈한 카페 '오랑오랑(Orang2)'이 있다. 함께 일하며 만난 3명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이름은 인도네시아어로 사람을 뜻한다는 '오랑'이 두 번. 카페의 이름에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사장님들의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저렴한 임대료와 매력적인 공간에 이끌려 신흥시장 안 폐가에 자리 잡았다는 '오랑오랑'은 원래의 공간이 주는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페인트칠을 하지 않은 노출된 콘크리트 벽면과 천장에 붙어있던 타버린 스프링클러는 이 공간이 지나온 세월을 보여준다. 탁상과 의자, 조명, 책, 스피커. 투박하게 있을 것만 있는 이곳의 여백은 그 세월을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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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오래된 철제 계단을 뜯어 직접 만든 주문 테이블과 궁서체로 '축 발전'이라 쓰인 커다란 거울. 합판을 덧대 만든 테이블. 낡은 것이 주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난간을 부여잡고 옥상을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빨간 벽돌건물 사이로 남산타워와 한강이 보인다. 손님들은 커피 향과 함께, 곳곳에 묻어있는 옛 흔적들을 모아 자신만의 스토리를 써내려간다. 공간이 주는 느낌 때문일까, 기계가 아닌 손으로 직접 내린 핸드드립 커피가 유명한 것이 당연한 것만 같다.

마치 신흥시장의 일부였던 것처럼 자연스레 스며든 '오랑오랑'은 다녀간 사람들의 SNS를 통해 이미 입소문을 타고 있다. 버려졌던 공간에 생긴 이 카페가 '오랑오랑'으로 또 신흥시장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유행을 따라 예쁘고 깔끔하게, '새 건물'처럼. 일관된 인테리어에 '이쁘기만'한 공간이 즐비한 요즘, 현재를 있게해 준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 풍기는 매력은 묵직하다.
곧 아트마켓으로 탈바꿈이 시작 될 신흥시장. 해방 이후 켜켜이 쌓여온 이곳의 역사와 새롭게 쌓여질 새 역사가 조화롭게 만나길 간절히 바래본다.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2가 1-62 신흥시장 안
영업시간 : 월-토(오전 11:00~오후11:00) 일(오전11:00~오후10:00)
우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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