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과학과 종교의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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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과학과 종교의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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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22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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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의 ○ 이야기
종교적인 의미로 보아서 나타나는 ○의 개념은 동서양 모두 구석기 시대에서부터 있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 형상은 신성한 의미를 가졌으며, 힘과 영원성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동양의 사상가들이 의미하는 ○의 개념을 살펴보면, ○의 상징은 차별 이전의 근원자리이며, 업을 초월한 바탕자리이며, 차등이 없는 평등자리이며, 변화와 불변을 동시에 수용하는 불생불멸의 자리이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한 자리였습니다. 이러한 ○의 의미는 태극, 무극, 일원상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였으며, 우주생성의 상징이거나 목금수화토 오행의 합일을 뜻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같이 ○의 상징은 음양의 조화와 불변의 진리를 뜻하는 것으로 음과 양, 변화와 불변이 합일하여 원만하고 완전한 우주의 진리를 표상하였습니다. 또한 서양의 사상가들이 보는 ○의 의미를 살펴보면 죠셉 캠벨(Josep Kambel)은 ○은 인류의 원초적인 이미지이며 ○의 상징을 아는 것이 바로 인간 자신을 아는 것으로, 우리는 원으로부터 나왔고 원으로 돌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의 공간적인 특성은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고, 시간적인 특성은 나갔다가 들어오는 시작과 끝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완벽한 총체성을 갖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는 ○은 인간이 항상 경험하는 삶의 여러 형태를 하나로 모아 집약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주의 상징이 되었다고 하였으며, ○에는 감각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신성이 있어서 ○의 중심은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종교적 상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에 대한 사고는 원불교의 일원상에 대한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칼 융(Carl Jung)은, 원운동은 인간성의 밝고 어두운 힘을 나타내며, 종류를 막론하고 상반되는 심리의 양극을 활발하게 움직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앞에서 깨고 나오게 하는 것, 그리하여 자기를 알게 되는 것을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은 대단히 오래된 마법적인 효과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의 마술이 수 많은 민속적 관습 속에 보존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양의 종교사상은 동양의 종교사상과는 그 근본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소개된 칼 융의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도(道, Tao)와 관련하여 모든 문화가 결핍해 있는 우리 서구인들의 마음은 중도(中道)를 통한 통합, 즉 이러한 내연적인 경험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부분과 비교할 수 있는 개념은 물론, 아직까지 이름조차 고안해 내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에 대한 개념은 동양과 서양 모두가 인간생활을 바탕으로 하여 그 뜻을 같이하고 있으나 이를 발전시킴에 있어서 동양은 종교적으로 크게 발달하였고, 서양은 과학적으로 크게 발달한 것이 큰 차이라 하겠습니다.

# 하나로 이어지는 ○ 이야기
종교는 인간의 초월적 감각과 내재적 감각으로 구분하여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까지 설명 가능한 과학과 종교의 역할과 관계를 의미 있게 표현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원불교에서 보는 초월영역은, 우주만유의 본원, 제불조사의 심인, 일체 중생의 본성, 대소유무에 차별이 없는 자리, 선악업보를 초월한 자리, 언어명상이 돈공한 자리 등이며, 내재영역으로는,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는 원리,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기는 원리, 언어명상이 완연해지는 원리, 무시광겁에 은현자재하는 원리 등입니다.

과학적인 특성은 몇 몇 사람이 주장한다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이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에 종교적인 진리가 과학적인 진리와 올바른 조화를 이루게 되면 우리 인간의 일상생활은 걸림이 없어지고 융화 발전하여 평화 안락한 세상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한계성이 정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성의 발전에 제한을 두지 않으나 실질성에 있어서는 과학을 수용해야만 합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종교는 높고 깊고 넓지만 무의미하고, 과학은 낮고 좁지만 진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과학은 그 학문적인 수행과정이 사실적이고 객관적이며 진실성을 그 주체로 삼기 때문에 삶에 있어서도 윤리 도덕의 가치를 높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원불교에서는 일원상 ○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용어사전을 보면, “원은 두렷하고 온전하다는 뜻으로, 모든 것을 하나로 합하고 하나로 통한다는 뜻이며, 인간의 마음을 온갖 사려분별로부터 끌어내려 본래의 지혜를 밝히고 서로가 막히었든 기운을 풀어서 모든 일을 바르게 실행 하도록 한다”고 쓰여있습니다.
원은 힘을 나타내며 서로 상반되는 양극을 활발하게 동화하게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주체를 나타내 보이고 스스로를 밝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의 속성으로부터 사람은 죽어도 새로 오는 세상에서 계속 살아간다고 하는 구체적인 믿음이 나타나고, 이 생명의 연속성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편안하고 뜻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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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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