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칼럼] 봄꽃과 생사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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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칼럼] 봄꽃과 생사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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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3.2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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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관응 교무(경남교구 신현교당)

육관응 교무님.jpg

제법 봄기운이 완연하다. 교당 화단에는 봄꽃들이 서로 시샘하듯 얼굴을 내 밀고 있다. 잠시 산보를 할 겸 고현시장 내에 있는 송화꽃방을 들러보았다. 소담스런 색깔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후리지아, 수선화, 연산홍, 마라고데스, 매발톱, 프리물라, 앵초, 베고니아, 시크라멘, 히야신스, 캄파눌라, 튜립, 펜지, 아네모네,긴기아난 등이다. 이 꽃들을 보고 있으면 봄은 이미 꽃방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더욱 진열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꽃들의 전시장 같다.
한참을 둘러본 후 봄꽃을 중심으로 작은 화분들을 부탁했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교도의 천도재 불단 장식을 위해서다. 하루가 지난 후 꽃꽂이 옆에 장식할 화분이 배달됐다. 꽃들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피다 영가도 봄꽃과 같이 화사한 모습으로 인도 수생하기를 염원했다. 천도재 2재식을 지내기까지 여전히 그 슬픔이 가시지 않은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난히 책임감이 강하고 봉사심이 남달랐던 영가는 스스로 죽음을 준비했지만 죽음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설법 시간에 영가와 제주들을 위해 생사의 도에 대해 말했다. 생사는 가고 오는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생에는 언제나 죽음이 함께 공존해 있음을 주지시켰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아침에 응접실에 앉아서 보았던 100년이 넘은 은행나무와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 했다. 생사에 쉽게 다가 설 수 있는 생활 속 감각이었다.
4년째 교당에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매년 은행나무 꼭대기 나뭇가지에 걸쳐있는 까치집 2개에 관심을 가졌다. 이만쯤 되면 바닥에는 어디서 물어 왔는지 10∼50㎝의 나뭇가지가 많이 떨어져 있다. 새로 집을 보수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올해는 오른쪽 집을 보수했다. 내년에는 왼쪽 집에서 살 것이다. 살다보니 알아 졌다. 우리의 생사도 마찬 자기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대종사께서도「대종경」천도품 8장에서 “사람의 생사는 비하건대 눈을 떳다 감았다 하는 것과도 같고, 숨을 들이 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것과도 같고, 잠이 들었다 깼다 하는 것과도 같나니, 그 조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치는 같은 바로서 생사가 원래 둘이 아니요 생멸이 원래 없는지라, 깨친 사람은 이를 변화로 알고 깨치지 못한 사람은 이를 생사라 한다”고 법문했다.
「열반 전후에 후생 길 인도하는 법설(천도법문)」에서도'너의 육신 나고 죽는 것도 또한 변화는 될지언정 생사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영가와 재주들을 대상으로 조선 중기의 고승이었던 서산대사의 시 중 '눈길'의 일부를 인용해서 말했다.

생야일편 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삶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라오.

사야일편 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스러짐이오.

부운자체 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것.
생사거래 역여시(生死去來亦如是) 죽고 살고 오가는 것.

이 모두 그와 같다고 했을 때 영가의 부모님을 비롯 가족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일반적으로 태어났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야 남은 인생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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