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위와 계문 그리고 연고성 (緣故性)
상태바
법위와 계문 그리고 연고성 (緣故性)
  • 관리자
  • 승인 2017.05.04 0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길튼교무의 정전산책 (91) ㅣ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방길튼교무님.jpg

계문을 받아 지키는 것은 외워서 머리에 입력할 뿐만 아니라 몸에 각인하는 것입니다. 법위 향상에 있어 계문은 이처럼 받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 일반에
서는 계는 정과 혜의 기반이지만 소태산 대종사에게 있어 작업취사의 계는 정신
수양의 정과 사리연구인 혜의 귀결인 것
입니다.
법위등급에서는 먼저 계문은 받아 지켜야 하는데, 보통급은 보통급 10계문을, 특신급은 보통급 십계와 특신급 십계를, 법마상전급은 앞의 20십계에 법마상전급 10계를 받아 지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법위에서 취사력은 일단 삼십 계문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취사력의 기반은 계문으로, 계문이란 엷은 얼음 밟는 것 같이 삼가고 경계하라는 경고문입니다. 솔성요론이'하기로 한 일'이요'하자는 조목'이라면 계문은'안 하기로 한 일'이요'말자는 조목'입니다. 계문을 긍정으로 돌리면 솔성요론이며 솔성요론의 네가티브(negative)가 계문입니다. 이처럼 계문은 심신작용처리의 경계 센서로, 이 계문의 센서를 통해서 하기로 한 일과 안하기로 한 일에 취사하는 주의심을 챙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무념 처리 따로 계문대조 따로 심신작용처리 따로가 아니라 하나로 통하는 작업취사입니다. 별건이 아니라 하나로 통하여 있는 취사력인 것입니다.


# 계문의 근본정신과 연고(緣故)의 상황 윤리성


보통급 십계는 살ㆍ도ㆍ음ㆍ주처럼 신업(身業)이 중심이 되며, 특신급은 타인과ㆍ양설ㆍ꾸미는 말 등의 구업(口業)을, 법마상전급은 아만심ㆍ시기심ㆍ탐심ㆍ진심ㆍ치심 등의 의업(意業)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계문의 근본정신은 상대에 대한 자비심이 있는가 없는가? 말이나 행동이 과연 그 자비심의 표현인가 아닌가에 있습니다. 욕망 자체가 비윤리적이고 아름답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넘지 말아야 할'선 너머의 행동'이'자제된 행동'보다 더 타인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고통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겠다는'청정한 마음속 자비의 정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것이 계의 근본정신인 것입니다.
연고(緣故)는 이유와 사연으로 고정된 규범적인 행동방식(戒目·戒相)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수시응변(隨時應變)으로'자비와 청정이라는 계의 근본정신'을 나투는 것입니다. 삼십 계문에 연고조항은 보통급에 5조항, 특신급과 법마상전급에 각각 1조항씩 있습니다. 이 연고의 의미는 중요합니다.
“연고 없이 때 아닌 때 잠자지 말며”라는 조항은 잠자는 시간 말고는 자지 말라는 말도 되지만, 아플 때라든지 피곤할때 또는 쉴 경우는 잘 수 있다는 것입니다. 휴식과 여가에 대한 긍정적 수용이 필요합니다. 또한 여가 중의 화합과 인간적 교류를 위한 놀이를 지나치게 잡기(雜技)로 여겨서도 안 될 것입니다.
“연고 없이 술을 마시지 말며”,“ 연고 없이 담배를 피우지 말라”의 경우에서도 연고의 해석에 따라 삶의 태도와 수행의 자세에 차이가 있게 됩니다. 일상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술과 담배를 강제로 제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죄악시해서는 안 될 것이며 다만 자신의 건강과 수행을 위해서 표
준삼도록 권해야 할 것입니다.
“연고 없이 쟁투를 말라”고 할 때 소송이나 분쟁이 다 범계가 될 수 있으니 정당한 다툼은 열어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연고 없이 살생을 말며”와“연고 없이 사육을 먹지 말라”할 경우 생업의 차원과 최소한의 의식주의 차원에서는 해석의 유격을 두는 섬세함이 요청되며, 성과 결혼을 유연하게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하면 계문은 삶을 어둡게 할 것입니다. 또한“연고 없이 심교 간 금전을 여수(與受)하지 말며”의 경우에서도 금전관계와 친교가 배타적 윤리화되기보다는 지혜로운 교류로 모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계문의 연고성은 상황성에 부합되도록 이해되고 수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화를 향상시키고 삶의 질을 추구하는 면은 수용하되 타인 무시나 피해주는 방향은 배제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계문의 연고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수행의 성격과 법위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계문준수가 삶과 문화
에 대립되지 않으면서도 수도와 삶이 조화되는 법위향상의 사다리로 수용해야할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