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오피니언] 사드 배치 계획을 거두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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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오피니언] 사드 배치 계획을 거두어 주십시오
  • 관리자
  • 승인 2017.05.0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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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오피니언

한울안오피니언(원익선).jpg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정역원)

* 본 칼럼은 경향신문과 공동게재 됐습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께.
저는 지난달 18일 성주의 롯데골프장 입구 진밭교 농성장으로 향했습니다. 떠나기 전, 주위에“민주화가 된 지 언제인데 아직도 이래야 하나”라고 푸념하며, 차를 몰았습니다.
긴박한 현장에는 민중의 거대한 함성이 온 산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이미 수천 명의 시민들이 소성리 삼거리에 모여 1600만 촛불의 힘을 이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철폐로 옮기자고 했습니다. 한 젊은 엄마는“박근혜가 저지른 잘못을 청소하자”고 자신의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이 민중이 롯데골프장으로 올라왔습니다. 그 가운데는 한상렬 목사, 문규현 신부, 유정길 법사, 권영국 변호사, 이름 모를 스님들과 수녀님들, 그리고 낯익은 여러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이미 기도를 마치고 밤샘농성으로 들어가고자 할 때였습니다. 누군가 교무들을 위해 천막을 치자고 외치자 너도 나도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땅에 못을 박고 나자 경찰들이 들이닥쳐 천막을 힘으로 철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다치기도 했습니다. 다시 시도한 끝에 마침내 천막이 쳐지고, 밤늦게까지 그 주위에 둘러앉아 지켜주었습니다. 자신들의 안위는 뒤로 한 채 남녀노소 울부짖으며 온 힘을 다하는 모습에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밤바람이 세차게 불어 견디기 어려웠는데, 민중의 힘으로 천막이 쳐졌습니다. 농성하는 교무들의 머리 위에 왜 천막을 쳐주고자 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야말로 최전방의 보루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힘없는 민초들에겐 종교야말로 희망의 등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최후의 보루를 지킴으로써 자신들의 작은 힘들을 모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종교야말로 자신들의 정의로움을 대변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구현하는 종교인들이야말로 자신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우리곁에 온 예수이자 부처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날이 새고 일터로 돌아오려는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진밭교의 농성장으로 올라갔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이 평화의 성전을 지키는 파수꾼인 김선명 교무가 제게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 종교가 범한 가장 큰 죄악이 있다면, 작은 잘못에는 냉엄하면서도 큰 잘못에는 용서를 남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 잘못을 참회하며, 민초들이 바라는 것 처럼 힘없는 사람들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드는 인류의 욕망 덩어리인 미국이 보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사드 배치를 막는것은 곧 우리 자신의 삿된 욕망을 제거함과 동시에 한국 종교의 정체성을세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만큼이나 한이 많은 아일랜드의 그룹 웨스트라이프의'유 레이즈 미 업'이라는 노래를 틀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받쳐 줄 때, 나는 강인해집니다.”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며, 밤새워 농성하고 있는 교무들과 동지들이 떠오르며 눈물이 흘렀습니다. 또한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쓸 때, 민중 모두가 부둥켜안고 환호하며 자랑스러워했던 대한민국이 평화의 나라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염원했습니다.
성주가 평화의 땅인 이유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원불교 2대 종법사 송규가“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 세계 건설하자”는 대동의 윤리로써 세계평화를 외친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우 송도성은 해방 직후 해외에서 귀환하는 수십만명의 전재동포 구호사업을 전국 각지에서 이끌다가 전염병에 걸려 열반했습니다. 민중에 대한 사랑은 이들 가문의 전통이었습니다. 두 아들의 부친 송벽조는 일제강점기에 일왕에게 정신 차리라고 일갈하는편지를 보냈다가 불경죄로 감옥에서 고초를 당했습니다.
성주야말로 이처럼 자비로운 정의가 샘솟는 곳입니다. 따라서 민초들의 평화를 짓밟고 고통을 안기는 사드가 어떻게 이 땅과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사드가 진밭교를 건너가고자 한다면, 저 자신을 먼저 밟고 넘어가야 할 것 입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사드 계획이 철폐되어 마침내 성주가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평화의 성지가 되고, 돌아가는 길에는 기쁘게 성주 참외를 한 보따리씩 사가는 날이 오기를. 황 권한대행님, 부디 평화를 사랑하는 당신의 선한 마음과 의지로 이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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