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명상’에 대한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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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명상’에 대한 산책
  • 관리자
  • 승인 2017.05.2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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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튼교무의 정전산책 (93) ㅣ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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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일원상의 진리」에 나오는'언어명상(言語名相)'은 언어와 이름 그리고 이미지로, 언어명상의 상(相)은 마음 밖의 객관적인 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작용(心想)의 심상(心相)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 언어의관점들
<첫째>,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으로 곧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처럼 이름을 바루는 것이 천의를 바르게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또한 동중서의 언어 영물론적 관점으로, 언어를 천의(天意)의 표현으로써 천의를 담고 있는 영물적인 신성한 존재로 보는 관점입니다.


<둘째>, 언어를 도구적 수단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무엇인가를 지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도구적 언어관입니다. 그 물이 고기를 잡기 위해 필요하듯이 언어는 뜻을 얻기 위해 필요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장자의'통발'비유처럼 고기를 잡았으면 그물을 치워야 하듯이 뜻을 얻었다면 더 이상 언어는 필요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得意而忘言)


<셋째>, 용례(use)적 언어관입니다. 이는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으로, 언어란 그 언어가 사용되는 상황과 방식에 의해 규정되는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언어쓰임은 외적이고 공적인 규칙에 따르는, 그 단어의 사용방식이 곧 그 단어의 의미가 되므로, 그 삶의 문맥에 따라 공적인 규칙(용례)을 맹목적으로 배움으로써 '쓰임'(use)이 있는 것이지, 그 단어에 상응하는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내적 경험을 표현하는 사적 언어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용례(use)에 의한 공적 언어를 떠나 자신만이 내적으로 경험되는 사적 언어로 파악될 수 있다는 생각은 일종의 환상이고 기만이라는 것입니다. 언어의 의미는 내적이고 사적인 경험으로부터가 아니라 공적인 언어쓰임으로부터 얻어진다는 것입니다.


<넷째>, 가명(假名)의 언어관입니다. 언어에 상응하는 실재를 전제하여 그 언어 너머의 실재를 실체적으로 지칭하는 것을 실명(實名)이라 한다면, 가명(假名)의 언어관은 언어의 지시물이라 여겨지는 실재는 자신의 개념적 분별에 따라 구성된 연기(緣起)적 현상으로, 언어 밖의 실재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 역시 또 하나의 언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언어 너머에 실재가 따로 있는것이 아니라 언어로써 실재를 설시(設施)한다는 것입니다. 언어의 그물이 엮어 내는 가명의 세계, 그것은 바로 각자의 마음이 구성해 내는 가유(假有)의 세계인 것입니다.


# 언어명상이 돈공한 자리와 언어명상이 완연한상태
결국, 언어명상이 돈공한 언어관은 그 언어명상이 지시하는 것을 실유(實有)가 아닌 가유(假有)로, 실명(實名)이 아닌 가명(假名)으로 자각하는 것입니다. 언어는 이중적 성격을 지닙니다. 한편으로는 실제를 은폐하는 부작용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를 자각토록 하는 가교의 매개역할이 되기도 합니다.


언어명상에 매이지 않는 길은 언어명상으로 파악된 것 역시 또 하나의 언어명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직시하는 것으로, 언어명상으로 물든 허망분별을 허망분별로 자각한 그 마음은 이미 언어명상에 매인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언어를 언어로 자각하는 순간, 이미 그 언어명상의 업으로부터 벗어나 실제를 그대로 직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분별하기에 불안한 것입니다. 혜가가 달마에게 마음의 불안을 없애 달라고 청하자 달마는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 순간 혜가는 분별하는 지시(言語), 규정(名), 이미지(相)라는 언어의 업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불안한 마음을 찾는 그 마음, 불안을 불안으로 자각하는 그 마음은 이미 불안해하는 마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마음의 불안을 불안으로 자각하는 그 순간, 바로 언어명상이 돈공한 마음당체인 언어도단의 입정처에 들었던 것입니다.


언어명상이 돈공하다는 것은 언어가 절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매이지 않은 채 언어명상을 완연하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언어명상이 돈공한 자리이면서 동시에'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언어명상이 완연하여지는 것으로, 언어명상이 텅 빈 진공(眞空)한 자리이면서 또한 언어명상이 분명한 묘유(妙有)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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