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를 법문에 대조하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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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를 법문에 대조하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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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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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교리실천강연회 현장을 찾아_「마음으로 증득하고 몸으로 실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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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대 초반, 직장의 언니를 따라 초창기 부산 대연교당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당시 양산 김중묵 법사님의 교리강습이 진행 중이라 3~4일간 다니게 되었는데 그때에 십이인연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제 가슴에 와 닿아서, 저는 원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원망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근무하는 직장에서는 얄미운 사람이 있었고, 진학관계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직장언니와 함께 교당을 계속 다니다가 결혼을 하면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친정은 불교를 믿었고, 시댁은 천주교를 믿는 집안입니다. 중매결혼이었기에 저는 결혼조건으로 교당 다니는 것을 허락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교무님들의 '못자리판' 법문을 여러 번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일원가족에 대한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 가족 간 종교 갈등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들을 어떻게 교화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 남편에게 내색하지 않고 교당에 가자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원불교에 누가 될 만한 행동과 말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주말이 되면 더 조심하고 남편에게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공을 들였습니다.

그러다 큰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좀 봐달라고 부탁하면서 교당에 같이 가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법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남편은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해도 끝내 밖에서 아이와 함께 기다렸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 법회 보는 것이 궁금하였는지 슬며시 뒷자리에 와서 앉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입교를 권하자, “내가 한번 가면 계속 교당에 나가야 되는데 좀 더 알아보고 판단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입교할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 교무님이 이임하실 때가 되어 남편에게 “교무님께 선물을 해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라고 묻자, “어떻게?”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이때다싶어, “ 교무님이 제일 좋아하는 선물은 입교”라고 했더니, 못 이기는 척 입교원서를 적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도록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때부터 법회에 나오기 시작한 남편은 지금까지 집안의 대소사나, 직장일이 아니면 꾸준히 교당을 나오면서 교화단 단장으로 교당 살림을 살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 3남매는 어릴 때 부터 언제나 교당을 함께 다녔습니다. 어린이 법회부터 가족 모두가 법회에서 잔칫날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가족 모두가 같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더욱 실감하고 있습니다.


세 아이들은 고3때를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자녀들이 사춘기 때는 여느 부모들처럼 힘 들기도 하였지만, 법문에 대조하면서 공부심을 챙겼습니다.


정산종사법어 근실편 27장에 사감이 말하기를 “학생 한 사람이 아무리 지도하여도 말을 듣지 아니하오니 어찌하오리까?” 하고 말씀드리자, 정산종사님은 “사람을 지도하는 이가 자기의 성질대로 사람을 굽히려 하면 되지 않나니, 먼저 그 사람의 근기 따라, 성질 따라 살피고, 소질과 소원을 잘 알아서 서서히 순리로 지도하여야 교화가 잘 된다”라고 답을 주셨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개성이 아주 강합니다. 저는 말재주가 없는 편 이어서 그리고 또 필요없는 말을 하게 되면 감정이 올라올 수 있으니, 되도록 말을 삼가하고 아이들 방에 청소를 하러 들어
가서 아이들 베개를 쓰다듬으며 심고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 방에서 심고를 올리는데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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