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性理)와 관조(觀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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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性理)와 관조(觀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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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0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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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튼교무의 정전산책 (94) ㅣ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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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정기훈련법」에 제시된 정기 훈련 과목 11가지 중에서 소태산 대종사의 구도와 가장 밀접한 과목은 '성리'입니다.


소태산은 성리란 '우주만유의 본래 이치와 우리의 자성 원리를 해결하여 알자 함'(정기훈련법)이라 정의하며, “견성을 하면 어찌 되냐?”는 제자의 질문에 “우주만물의 본래 이치를 알게 된다.”(성리품 21장) 하십니다. 즉 우주만유의 소종래인 그 본래자리는 달리 말해 우리의 자성(自性)이며, 그 자성의 원리를 해결하는 것(見性)은 우주만유의 본래 이치를 아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소태산은 이러한 성품의 참 모습(眞體)은 생각으로 헤아려(思量) 알아지는 자리가 아니니 관조(觀照)로써 깨쳐 얻으라고 당부하십니다.(성리품 31장)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 작용하는 마음을 직시(直視)하여 그렇게 직시하는 마음당체(自性)을 돌이켜 보라(返照)는 것입니다. 분석하면 '의두'가 되고 관조하면'성리'인 것입니다.


# 소태산의 구도와 의심
소태산 대종사의 구도과정은 '의심해결'이었습니다. 7세부터 의심이 시작됨을 따라 모든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더니 이 의심 저 의심이 한가지로 소년 대종사를 답답하게 합니다. 소태산에게 있어 11세~15세까지의 산신기도와 16세 ~ 20세 까지의 구사고행은 어찌보면 의심해결의 부속적 사건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의심해결을 위한 주변장치였던 것입니다.


그 후 21세에 탈이 파시로 부친이 남긴 채무를 해결한 후 22세 무렵부터 다시 의심해결에 집중하여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라는 의심에 몰입됩니다. 이때의 '이 일'은 의심해결로, “이 의문을 어떻게 해결할꼬?”라는 사무치는 마음이었습니다. 소태산에게 의심해결은 일대사의 큰일이었던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부친께서 당신의 구도를 뒷바라지 하다가 남기신 부채를 해결하는 경제운영의 능력을 발휘하고도 그 돈벌이에 끌려가지 않고 그 중력을 박차고 다시 의심해결의 구도에 몰입하게 됩니다. 그 만큼 소태산에게 의심해결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당면과제였습니다. 25세 무렵에는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라는 의심 덩어리마저도 잊게 되는 '강변입정상'으로 대표되는 깊은 입정(入定) 상태에 들게 되어, 26세인 병진 삼월 출정(出定)하여 대각하십니다.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은 의심에 초점이 있습니다. 의심이 뭉치고 뭉쳐 의심과 하나가 되어 의심 이외에 어떠한 것도 끼어 들 틈이 없는 마음이 되며, 이러한 의심은 드디어 그 의심자체마저 찾아볼 수 없는 의심 돈망(頓忘)의 경지에 들게 됩니다. 그 자리에는 밤낮으로 염원했던 의심 미해결의 답답함도 사라지고 아들의 소원해결을 간절히 바라시었던 부친의 기대에 대한 안타까움도 녹아내렸으며 나라 잃은 서러움도 승화되었으며 온갖 한계와 원망이 다 해소되는 경지에 들게됩니다. 시공(時空)과 주체가 사라지는 즉 물아(物我)의 구분과 시간과 처소를 잊는 삼공(三空)의 삼매상태가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살아있는 침묵, 신령한 침묵, 깨어있는 입정에 드신 것입니다. 이러한 일체가 텅 빈 자리에 근원하여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광명과 조화가 드디어 대각으로 폭발하게 된 것입니다.


# 의심과성리
소태산의 구도는 의심에 몰입하여 의심 당체를 직시했던 것입니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노려보듯이 의심이라는 쥐를 직시하더니 문득 의심의 쥐를 직시하는 고양이 자체를 자각하신 것입니다. 의심이라는 쥐를 통해 고양이라는 것을 직시하는 마음자체를 직관(直觀)하신 것입니다.


성리는 평소 궁금함을 일으켰던 문제를 잡아 그 의심에 집중하든지, 역대 선사들의 공식 문건(公案)인 화두를 들든지, 어떤 문제가 되었든 궁금한 의심이 걸리면 되는 것입니다. 또는 지금 있는마음이든, 일어나는 마음이든, 하려는 마음이든 또는 알아차리는 마음이든 그 마음에 집중하여 그렇게 집중하는 그 마음 자체를 직관하는 것입니다.


성리는 이처럼 마음당체를 내관(內觀)하는 관심입정(觀心入定) 공부이며, 알아차리는 마음의 방향을 뒤집어(廻光) 본래마음(自性)을 반조(返照)하는 견성(見性) 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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