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疑心)과 반조(返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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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疑心)과 반조(返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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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1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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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튼교무의 정전산책 (95) ㅣ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방길튼교무님.jpg

소태산 대종사는 의심에 몰입하여 25세 무렵에는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 라는 의심덩어리 마저도 잊게 되는 입정돈망(入定頓忘) 상태에 들게 됩니다. 의심과 하나가 되어 오직'의심'뿐으로 의심 이외에 다른 사념이 끼어 들 여지가 없는 그리하여 의심자체마저도 돈망하여 어떠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자리에 드십니다. 이 입정돈망은 마치 허공에 구름이 아무리 끼어도 허공자체에 들면 일어났다 사라지는 구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과 같다 할 것입니다.


마음은 행위와 감정과 생각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호흡의 행위 즉 들이쉬고 내쉬는 상태에 따라 생멸심이 일게 됩니다. 그러나 그 호흡에 집중하여 그렇게 집중하는 마음자체를 직시하면 호흡의 생멸만 역력할 뿐(惺惺) 호흡을 바라보는 마음당체에는 일체의 다른 사념이 달라붙을 수 없습니다.(寂寂) 마치 밤하늘
이 고요하면서도 별들이 초롱초롱한 격 입니다.


또한 마음에는 감정이 수시로 일어났다 사라지게 됩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 그 감정을 알아차리는 마음 원래는 슬프고 기쁜 감정은 분명하되 기쁨과 슬픔에 물들지 않는 여여(如如)한 자리입니다.


또한 마음에는 생각이 뜬구름처럼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생각은 지금 있다가도(受) 다른 생각으로 일어나고(想) 하려는 의지로 나아가고(行) 이를 식별합니다.(識) 이러한 생각들의 흐름을 멈추고 그 생각들의 방향을 돌이켜 비춰본 자리는 생각에 물들지 않는,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본래모습입니다.


이와 같이 행위나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날 때 그 행위·감정·생각을 알아차리는 그 마음을 직관(直觀)한다든지, 또는 궁금해 하는 의심당체를 관조(觀照)하여 성품의 원리를 해결하는 것을 '성리'라 합니다. 이처럼 성리는 일어나는 마음이나 의심에 집중하는 그 마음을 돌이켜 비춰보는 공부로, 알아차리는 그 마음의 방향을 뒤집어 마음의 근원(自性)을 반조하는 관심입정(觀心入定)의 견성공부입니다.


성리의 방법은 지금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그 자리를 내관(內觀)하는 것 입니다. 예를 들어 짜증이 나면 바로 '짜증인 줄 아는 그 마음은 어떻게 생겼을까?'라고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짜증인 줄 아는 마음에는 짜증이 들려 붙을 수 없으면서(寂寂) 짜증 그대로 드러납니다.(惺惺)

달리말해 외경으로 끌리는 눈앞의 형상(形相)인 언어명상만 내려놓으면 내면에 항상 흐르고 있는 그 빛나는 자리가 드러납니다. 마치 구름 너머에 태양이 있듯이 구름만 놓으면 태양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정전』「의두요목」중'세존이 도솔천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이미 왕궁가에 내리시며, 모태 중에서 중생 제도하기를 마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만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는 것이 그 무엇인가?'등을 의심거리 삼아〈그 무슨 뜻인가?〉〈그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집중하여 그렇게 궁금해 하는 의심 당체를 돌이켜 직관하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발견하여 알고자 하는〈그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만 그쳐있는 의심-일념에는 의심에 대한 궁금함은 생생한데(惺惺) 생각과 잡념이 침범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寂寂)


소태산은 일례로 무비송(無非頌)에 집주(集注)하여 그 집주하는 마음당체를 잡도록합니다. '변산구곡로석립청수성 무무역무무(無無亦無無) 비비역비비(非非亦非非)'의 '무(無)'에 몰입하거나 또는 '비(非)'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없다.' '없다.'의 '무'에 오롯이 멈추어 또한 '없고 없다.'는 무관심의 '무'에 직입(直入)하면 일체의 잡념이 뚝 끊어지고 '무'만 확연한 텅 빈 각성이 드러납니다. 또한 '아니야' '아니야'에 집주하여 '아니고 아니다.'라는 판단멈춤의 비(非)에 그치면 '기다 아니다'의 분별이다 떨어진 '비(非)'인 줄 아는 신령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이와 같이 집주하여 내관하는 반조공부를 하면 일념 바깥도 없고 그 안도 없게 됩니다.


이처럼 성리는 일어나는 마음이나 알고자 하는 의심에 직시하여 밖으로 향하고 외경에 묶이는 마음의 방향을 뒤집어 마음원래를 비춰보는 방법으로 일명 반조선(返照禪)이라 하며, 이렇게 반조하면 적적성성(寂寂惺惺)한 텅 빈 각성, 진공묘유(眞空妙有)한 텅 빈 작용이 드러납니다. 원래마음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심의 역할은 원래마음을 가리키는 손가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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