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두와 성리의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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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두와 성리의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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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01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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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튼교무의 정전산책 (96) ㅣ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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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제3 수행편의 「의두요목」에는 불조의 화두가 다수 있는데, 이 화두는 '의두'의 조항일 뿐만 아니라 '성리'의 실전입니다. 왜냐하면 「원불교교전」의 『정전』에는 화두의 문구가 의두에 편입되어 있으나 『정전』의 시원인 『불교정전』에는 화두에 해당하는 문구가 의두에 있지 않고 성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화두는 의두의 조항이면서 성리의 방법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정전』에서 의두는 '사리간 분석'하는 공부라면, 성리는 '자성의 원리를 해결'하는 공부라 정의하시며 이를 관조로써 깨쳐 얻으라고 하십니다.(성리품 31장)


즉 「의두요목」중의 화두는 그 사용처에 있어 분석하는 의두 방식과 관조하는 성리 방법에 통용되는 중복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두와 성리를 「의두요목」1조 “세존(世尊)이 도솔천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이미 왕궁가에 내리시며, 모태 중에서 중생제도하기를 마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라는 의심거리에 적용해 볼 경우, 그 시작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의두의 방법은 도솔천과 왕궁가라는 상징은 무엇을 뜻하며, 모태 중에서 중생제도를 마쳤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생각을 굴리고 마탁하여, 이를 우리의 삶에 타당하고 이치에 맞도록 사리를 밝게 분석하는 공부입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설명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성리는 논리의 방법을 취하지 않습니다. 논리와 개념을 추구하면 성리와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개념적 논리는 성리에 들어가는 초입에 기반은 되어도 그 자체가 실지 방법은 될 수 없습니다. 도솔천이나 왕궁가 또는 모태와 중생제도를 다 마쳤다는 의미를 파악하는 논구는 성리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 개념을 잘 몰라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리는 눈앞의 모양이나 모습을 탈락시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전개된 모양과 모습은 언어명상(言語名相)의 경계이니, 이에 끌리어 붙들리지 말고 단번에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마치 눈앞의 등불을 끄면 그 배경의 등불이 드러나는 격으로, 방안의 불빛이 꺼지니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이 환히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니 도솔천이니 왕궁가니 하는 개념도 모태 중에서 중생제도를 마쳤다는 논리의 흐름도 다 마음의 모양(心相)으로, 그 배경에서 항상 흐르고 있는 청정한 광명을 가로막는 분별 집착일 뿐입니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모양에만 향하는 그 의식을 내려놓기만 하면 도솔천이니 왕궁가니 하는 일체의 현상을 두렷이 밝히고 있는 그 자리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물며 모태니 중생제도니 따질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즉 눈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을 내려놓고 그 배경에서 역력히 비추고 있는 자리를 직관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솔천인 줄 아는 그 자리, 왕궁가인 줄 훤한 그 자리가 항상 그렇게 배경으로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눈앞의 모양에만 붙들려 있는 그 모습만 내려놓으면 두렷하게 비추고 있는 그 역력한 배경이 분명해집니다. 그 자리를 돌이켜서 관조하자는 것입니다.


이를 응용하면「의두요목」3조 “세존이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대중이 다 묵연하되 오직 가섭존자만이 얼굴에 미소를 띠거늘, 세존이 이르시되 내게 있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마하가섭에게 부치노라 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에서 염화시중(拈花示衆)의 연꽃도 눈앞의 모양입니다.


이 모양에 붙잡혀 있으면 그 배경으로 있는 정법안장은 모연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섭존자만이 미소를 띠었다.' '정법안장을 마하가섭에게 부치노라'등도 다 모양(心相)이므로, 이에 걸려 분별 주착하면 무슨 수를 써도 소용없게 됩니다.


물건과 배경의 관계에서 물건에 집착하는 의식을 놓으면 그 배경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배경을 알게 되면 물건도 배경의 다른 모습으로 찬란히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시원한 바람에 둥근 달이 떠오르니 만상이 밝게 드러나는(淸風月上時萬像自然明) 격입니다.(성리품 1장)


「의두요목」중의 화두는 의두와 성리에 걸쳐 있습니다. 사리간에 명확한 분석이 요청되는 의두와 우리의 성품을 관조하여 그 원리를 해결하는 성리는 상황에 따라 적용되어야 합니다. 분석과 관조의 방식에 혼선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며, 특히, 성리관조를 의두분석에 매몰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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