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밖에 모르는 여자의 마지막 연가(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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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밖에 모르는 여자의 마지막 연가(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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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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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유행가」(29) ㅣ 조휴정 PD(KBS1 라디오 PD,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심수봉의 '장미빛우리사랑'

유행가(심수봉).jpg

아직도 심수봉을 처음 봤던 1978년 MBC대학가요제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피아노를 치면서 '그때 그 사람'을 부르던 그녀는 낯설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대학가요제 인기가 엄청나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보는 것처럼 온 가족이 모여앉아 심사를 했고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는데요, 심수봉은 수상 여부보다 등장 자체가 화제였습니다.


대학가요제 특유의 풋풋함 없이 능수능란하다고나할까, 성인가요풍의 노래도, 콧소리 섞인 목소리도 고등학생이던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호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심수봉은 단박에 가요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녀의 목소리와 노래가 너무나 뛰어나고 독창적이라는 겁니다.


'아, 그런 건가?' 어리둥절했었는데 그 이후 심수봉이 만든 노래들을 보면 확실히 우리가 뭘 모르긴 몰랐나봅니다. 저는 심수봉의 진가를 '무궁화'때 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조국애'를 화두로 삼은 노래를 저렇게 애절하고 부드럽고 아기자기하게 부를 수 있구나, 감탄했거든요.


흔치않은 여성 싱어송 라이터로 '여자이니까', ' 그때 그 사람', '젊은 태양', '당신은 누구시길래',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엔 난 몰라', '무궁화', '미워요', '장미빛 우리사랑', '비나리'등 히트곡이 화려합니다.


저는 그녀와 조금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2003년, 캐나다 이민 100주년 기념 공개방송 때문에 토론토에서 3박 4일을 함께 지냈는데요,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그녀는 음악 앞에서는 거의 '성직자'와 같았습니다. 그렇게 음악과 '사랑' 밖에 모르고 살았기에 지금의 심수봉이 있는 거겠죠. 공연이나 사석에서 어찌나 자신의 개인사를 솔직하게 말하는지 이제는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행간까지도 궁금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저는 그녀의 노래 중 드물게 밝은 '장미 빛 우리 사랑'을 가장 좋아합니다.


“언젠간 떠나갈 인생이지만 되도록 오래 남아줘요. 때론 바라보며 때론 기다리며 이대로 이렇게 지켜줘요. 단 하나 당신, 내 사랑 당신, 영원히 내 곁에 있어줘요. 오늘은 왠지 울고 싶어요. 당신의 품이 슬퍼져요. 불타는 사랑, 그윽한 눈길, 부드러운 음성, 그대사랑. 이별의 종착, 눈물의 종착, 방황의 종착, 나의 사랑 ”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늙어가고, 같은 날 떠나가길 우리 모두 간절히 바랍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처음 만났던 날의 푸르게 젊은 그를 기억하는데 어느새 굵은 주름이 늘어나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날, ' 아, 이 사람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상상만 해도 두렵고 눈물이 납니다. 그래서 '오늘은 왠지 울고 싶고 당신의 품이 슬퍼지는'겁니다.


부부, 연인뿐이겠습니까. 부모님도 친구도 자식도 언젠가는 만질 수도 바라볼 수도 없는 날이 옵니다. 왈츠풍의 선율에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는데도 듣다보면 눈물 나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아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는 인생은 실패한 겁니다.


이별, 눈물, 방황을 끝낼 수 있는 것도 사랑뿐입니다. 심수봉만 그렇겠습니까, 유명하지 않아서 알려지지 않았을 뿐, 우리의 삶도 다 한편의 드라마고 눈물겹죠. 뭐가 뭔지도 모르고 보낸 시간들, 이제 조금 인생을 알 것 같으면 세상을 아주 떠날 날이 멀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없습니다.


벌써 2017년도 반이 지났습니다. 눈 깜짝하면 연말이라고 아쉬워할 겁니다. 불타는 사랑, 그윽한 눈길, 부드러운 음성을 오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표현하고 느끼게 해줘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랑 말고 뭣이 중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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