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산책] intro - 편지를 봉하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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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산책] intro - 편지를 봉하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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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2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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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무의 ‘유림산책’(儒林散策) ① | 박세웅 교무(북경대 철학박사)

박 교무의 유림산책(새연재-옛날대종경자리에).jpg

교단의 정책인재로 선발이 되어 성균관대학교에서 2년간 유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2012년 중국으로 어학연수와 베이징대학교 박사입학 시험 준비를 위해 떠나게 되었다.


나는 사실 학문에 큰 뜻을 두지 않았었다. 교단의 한 구석에서 심사(心師)·심우(心友)를 모시고 대종사의 교법을 실천하며 나누는 재미 하나면 충분했다. 동안양 교당 부교무로 처음 발령을 받아 교화의 재미를 느끼며 살던 중 교육부에서 정책인재를 선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스승님의 권유로 신청을 하게 되었다. 신청하는 날까지도 다른 분들이 선발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나는 결국 교단의 명을 받들게 되었다. 당시 잠시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나에게 다시금 큰 서원을 세우게 한 것은 정산종사의 법문 한 구절이었다.


“도를 구하는 것과 학문을 하는 것이 둘이 아니니라. 서원을 굳게 세우고 도와 학문을 겸비한 인물이 될지니라.”


우여곡절 끝에 4년간의 베이징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올해 7월 귀국을 했다. 공부만 하느라 세상물정 모르고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모르는 나에게 한울안신문 편집장 박대성 교무가 집필을 제안했다. 그와의 이야기 끝에 뜻이 통하여 제안을 수락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주제와 내용은 자유란다. 평소 그의 대담한 성품 그대로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자유라는 단어가 그렇게 부담스럽게 들리기는 난생처음이다. 비록 집필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공부한 것이 원불교학과 유학인지라 결국은 보고 배운바 대로 풀어낼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교무로서 유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대종사는 불교만을 혁신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불교혁신을 표방하여 나온 원불교이지만 그 교리체계 속에는 분명 유학사상을 혁신할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일례로 정산종사는 충효열(忠孝烈)에 대해서 새롭게 정의하며 그 본의를 시대에 더욱 적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정산종사법어 경의편 58장-60장 참고)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집필의 목적이 원불교와 유학을 단순히 비교하여 원불교의 우월성을 말하는데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산종사의 말씀처럼 대종사가 공자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법을 펼쳤을 것이고, 공자가 대종사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이 법을 펼쳤을 것이다. 진리는 결국 하나이기 때문이다.


단지 두 성인께서 만난다면 무엇을 이야기하실까 궁금하다. 그래서 『정전』·『대종경』과 『논어』의 말씀을 통해 두 성인의 진리세계가 어떻게 만나질 수 있고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화두를 던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더 넓게는 『정산종사법어』와 『대산종사법어』 그리고 『사서삼경』을 아울러 활용하고자 한다.


집필한 원고들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심형(心兄) 한 분이 정약용 선생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해주었다. 두고두고 가슴깊이새기지않을수가없다. “편지를 쓸 때마다 두세 번씩 살펴보며 나의 원수가 보더라도 아무 일 없을지, 수백 년 뒤 안목 있는 이들이 본다 해도 놀림거리가 되지 않을지 생각해 본 후에 편지를 봉하라.” 이제 격주로 독자들에게 보낼 편지를 봉하게 될 것이다. 두려움이야 없지 않겠지만 한 편으로는 두 성인의 이야기를 그저 전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기도 하다.


사(私)없는 마음으로 그저 한 글자 한 글자 대종사와 공자의 말씀을 받아 적어 내려가겠다. 이 마음으로 편지를 봉하려고 하니, 원수도 지자(智者)들도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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