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그리워질 때 떠올려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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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그리워질 때 떠올려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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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02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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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유행가」(33) ㅣ 조휴정 PD(KBS1 라디오 PD,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나훈아의'고향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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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어디예요?”이 흔한 질문에 저의 대답은 늘 복잡해집니다. 예전에는 “충북 음성군 소이면”이라고 원적을 말했는데 '소이면'이라는 지명이 너무 낯설어 본적인 “충북 청주시 북문로2가”라고 대답하지만 “언제까지 살았느냐”, “청주 출신 누구를 아느냐”며 추가질문이 이어지면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됩니다.


사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서울이 고향이라고 말하기가 싫습니다. 서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55년을 살았어도 서울이 고향이라는 생각이 들질 않는 걸 어쩝니까. 서울이 고향이라고 말하는 건 세련되게 보일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이 똑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커피 같은 사람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고 드라마의 주인공은 절대 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지방도시, 그 중에서도 특히 오지이거나, 지명조차 생소한 산골이라면 이 사람이 어떻게 서울 이곳까지 왔을까 호기심이 확 생기면서 대화가 풍부해집니다. 본인들은 부끄러워할 때도 있지만 진한 지방 사투리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요! 서울사람들은 절대로 맛을 낼 수 없는 구수한 지역의 언어, 문화, 분위기를 슬쩍슬쩍 느낄 때마다 부럽고 따라 해보고 싶습니다.


특히 명절에는 지역의 특성을 십분 살린 프로그램이 많이 기획되는데 어김없이 선곡되는 노래가 있습니다. 50대 이상이라면 누구라도 흥얼거릴 수 있고 고향, 추석, 어머니,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나훈아의 '고향역(1972년, 임종수 작사 작곡)'입니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꽃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저도 이 노래에서 말하는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의 분위기를 압니다. 어렸을 때 외가가 있던 신탄진에 방학 때마다 갔었으니까요. '기차가 설까?'의심이 갈 만큼 한적하고 사람도 많지 않은 시골역은 이제 많이 사라졌거나 이쁜이 꽃분이도 대도시로 떠난지 오래되었겠지만 그래도 '고향'이라는 단어는 우리를 무장해제 시킵니다.


이름보다 누구네 집 몇째 딸로 불리고, 옆집 밥그릇 숫자까지 서로 다 알고 있어서 불편하고 답답하면서도 결국, 돌아갈 최후의 보루 같은 곳, 고향. 이제 며칠 후면 그 고향 역들이 활기를 띄게 되겠죠?


도시에서 상처받고 지친 내 새끼들을 맨발로 달려 나와 와락 안아줄 부모님! 뜨거운 여름 내내 정성껏 가꾸고 키운 먹거리를 바라바리 싸주시는 부모님. 무조건 나는 괜찮다며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자식만 걱정하는 부모님이 계신 고향은 우리의 산소호흡기이며 하늘의 태양일겁니다.


저는 어려서는 명절이 싫었습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명절을 싫어하니까요. 결혼해서는 꼭 이렇게 전을 많이 부쳐야 하는 걸까? 역시 싫었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가족들이 이렇게 건강하게 모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고마운 분들을 챙기고 안부전화라도 할 수 있는 건,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얼마나 상대방을 감동시키는지 세월 속에서 자연스럽게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올해는 어른들 뿐 아니라 고생하는 후배들과 오랜 시간 믿어주고 응원해준 친구들에게도 인사를 할 생각입니다.


이렇게 정겨운 노래를 부른 나훈아. 1966년 데뷔, 파란만장한 여러 사건사고 속에서도 수많은 히트곡을 냈고, 몇 년간의 은둔이 있었음에도 콘서트티켓이 몇 분만에 매진되었다는 아직도 펄펄 살아있는 전설. 나이가 들면 나훈아가 좋아진다는데 아직 저는 그가 가깝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영영', '무시로', '내삶을 눈물로 채워도'등은 명곡이죠. 올 추석에도 라디오에서 그가 구성지게 부르는 '고향역'들으시면서 안전운전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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