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심이 없어지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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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심이 없어지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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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2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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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처음 만나는 명상(23) ㅣ 박대성 교무(본지 편집장, 길용선원 지도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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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통해 마음의 크기가 확장이 된다면 이전에
내가 고집·집착 했던 일들이 너무도 우스워 보일 것입니다

초등학생 때 그렇게 소중하게 애지중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성인이 된 뒤에 가져다준다면 누구도 그 때와 같은 흥미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을 통해 마음의 크기가 확장이 된다면 이전에 내가 고집·집착 했던 일들이 너무도 우스워 보일 것입니다. 더 이상 그 대상이 '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본질은 모두가 텅 비어서(空) 항상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이치를 터득한다면 나를 비롯한 그 무엇에도 집착할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명상을 오래오래 계속하다보면 대상과 나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이른바 동일시(同一視)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를 탈동일시, 탈융합, 탈중심화와 같은 용어로 설명합니다. 심리치료적 관점에서는 탈동일시는 프로이드를 대표로하는 정신분석 전통에서, 탈융합은 수용전념치료(ACT)에서, 탈중심화는 인지행동치료(CTB)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탈동일시란 개념은 특정한 대상과 나를 하나라고 생각하는 관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동일시라는 개념은 개인이 성장하면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대상이나 인물들을 자신과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생겨납니다. 이때 생성된 이미지들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부정적으로 작동하면서 자아의 성장을 가로막습니다. 이런 경우에 자신과 대상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마음의 자주력을 새워야 합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동일시 현상을 통해 자신이 주착하고 있는 특정한 대상에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물론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이나 사상을 자신과 동일하게 생각하게 된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되지만 이것이 철석같이 굳은 습관이 되면 공부가 깊어지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장벽이 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서 그것이 나라고 집착을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이러한 인간이라고 하는 이미지를 만듭니다. 이런 이미지 곧 아상(我相)또는 에고(ego)에 갇혀있는 한 삶에서 오는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를 파란고해(波瀾苦海)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자기 자신이라고 집착된다면, 그는 감정과 생각을 자신의 소유[我所]라고 믿고 있고, 나아가서 그 감정과 생각은 바로 자신[我]이라고 믿는다면, 이것은 분명하게 '동일시'현상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나는 ~ 사람이야'라는 생각에 깊게 고정되어있다면, 이 생각을 벗어나 접하게 되는 다른 사고나 사상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래서 이를 심리학적으로 동일시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이 동일시 현상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 않고 안정적이고 자신의 자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동일시 현상에서 벗어나 '탈동일시'를 이뤄내야 합니다. 이를 통해야 진급하는 삶이 가능합니다.


이 탈동일시를 이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명상 또는 좌선입니다. 명상을 통해서 자신을 관조해 가다보면 자신과 특정 대상의 동일시 현상을 발견해낼 수 있습니다. 그 현상은 억지로 애를 쓰면서 지우거나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변화가 이뤄집니다. 명상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면밀하게 비춰보게 된다면 동일시 현상을 벗어나 착심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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