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산책] 불이 났다, 주어진 것은 물 한 통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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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산책] 불이 났다, 주어진 것은 물 한 통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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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26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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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무의 ‘유림산책’(儒林散策) ③ | 박세웅 교무(북경대 철학박사)

박 교무의 유림산책(새연재-옛날대종경자리에).jpg

중국의 왕보어(王博)라는 철학자는 그의 저서 「장자철학」에서 장자와 공자의 사상을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비교하였다. 어느 날 이웃집에 불이 났다. 위급한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것은 단지 물 한통뿐이다. 장자와 공자는 과연 어떻게 할까? 먼저 장자는 물 한통을 갖다 붓는다고 해서 그 화재를 진압할 수 없으므로 결국 헛수고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그 물을 그냥 자기에게 남겨둔다. 그래서 장자를 무정(無情)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공자는 당연히 그 물 한통이라도 뿌린다. 이것은 동정심의 표현이다. 그가 구하고자 하는 것은 심안(心安)이지 실제적인 결과가 아니다. 이처럼 유가는 무엇인가 따뜻한 면이 있다. 그 따뜻함이라는 것은 측은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과 나를 미루어 남을 헤아리는 마음(推己及人)에 기초한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날 공자의 제자 자로가 석문(石門)이라는 지방에서 유숙을 하였다. 신문(晨門:새벽에 성문을 열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자로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묻자 “공씨(孔氏)에게서 왔소.”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신문이 “그가 바로 불가능한줄을 알면서도 기어이 하려고 하는 사람인가?”라고 조롱하였다.(「논어」, 헌문) 세상에 이미 도덕이 타락하여 어차피 구제하기 어려우니 어리석게 노력하려하지 말고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말이다. 또 어느 날은 공자가 위(衛)나라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삼태기를 메고 공씨의 문 앞을 지나가던 은사(隱士)가 그 소리를 듣고 “비루하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거든 그만 둘 뿐이니, 물이 깊으면 옷을 벗고 건너고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너야 하는 것이다.”라고 조롱하였다.


이는 공자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데도 그만두지 않고 얕고 깊은 곳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말한다. “과감하구나! 어려울것이 없겠구나.”(「논어」, 헌문) 여기서 과감하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그렇게 과감하게 외면할 수 있음을 탄식한 것이다. 또한 어려울 것이 없겠다는 것은 사람의 어려움을 보고도 그렇게 쉽게 저버릴 수 있으니 다른 일 역시 이와 같이 어려울 것이 없겠다고 비판한 것이다. 공자는 이와 같이 천하를 한집안으로 여기고 사람들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가지고 있는 것이 단지 물 한통뿐일지라도.


대종사는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우리의 생각을 단순히 장자처럼인가 공자처럼인가로 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물 한 통을 결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고자 하신 대종사의 포부와 경륜 안에는 단 한 사람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대자대비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제자가 정산종사에게 어떻게 일체생령 모두를 다 낙원으로 인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자 이에 정산종사는 “일시에 한 번에 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제도의 정성을 쉬지 않는다면 어느 날엔가 가능하지 않겠는가”라고 답한다.


어쩌면 화재를 진압하는 진정한 위력은 그저 내가 가진 물 한 통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번뇌에 고통 받고 있는 인류의 마음화재를 진압하기 위한 진정한 위력은 “그 생활에 어찌 파란고해가 없겠느냐”(「정전」, 개교의 동기)하시며 아파하신 그 측은한 마음과'제생의세(濟生醫世)'하고자 하신 그 간절한 서원에 있을 것이다.


“어이 장자선생, 그 물통 내가 좀 뿌릴테니 냉큼 이리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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