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처럼 초라한 여인의 가을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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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처럼 초라한 여인의 가을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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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1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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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유행가」(35) ㅣ 조휴정 PD(KBS1 라디오 PD,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문정선 '나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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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추워졌습니다. 아직 낙엽도 제대로 못 밟았는데 이대로 가을이 가버리는 건 아니겠지요? 방송국을 갈 수 없는 요즘, 저는 많이 걷습니다. 가을은 '길'에서 만나는 계절이니까요.


광화문, 종로, 남산…. 걷기만 해도 가을엔 멋진 여행이 됩니다. 어머, 이곳이 언제 이렇게 바뀌었지? 익숙했던 동네가 놀랄 만큼 세련되게 변신한 모습에도 감탄하고 수십 년 전이나 별로 달라진 것 없는 동네는 그 나름대로 친근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빠르고 편리한 지하철도 좋지만 저는 창밖을 볼 수 있는 버스를 더 좋아해서 걷다가 지치면 버스도 타면서 이 가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운 좋은 날에는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도 하는데 아름다운 가을의 풍광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영화 한 편 찍는 기분입니다. 이 노래도 요즘 들으면 딱 좋을 텐데, 기억하시나요? 문정선의 '나의 노래(1971년 발표, 신우철 작사, 김강섭 작곡)'를.


“샛노란 은행잎이 가엾이 진다해도 정말로 당신께선 철없이 울긴가요. 새빨간 단풍잎이 강물에 흐른다고 정말로 못 견디게 서러워하긴가요. 이 세상에 태어나 당신을 사랑하고 후회 없이 돌아가는 이 몸은 낙엽이라. 떠나는 이 몸보다 슬프지 않으리”


'문정선',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한 가수일겁니다. 예전에 선배님들께서 “같이 일하는 팀들이 너무 젊어지니까 재미가 없다”고 하시더니, 언제부턴가 제가 좀 그렇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80년대 생, 심지어 최근에는 90년대생까지 있으니 공감대를 좁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60년대 생들에게는 김추자를 모르면 간첩이지만,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김추자를 설명해줘야 합니다, 전혀 모릅니다. 김추자 같이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도 모르니, 문정선이라는 가수는 정말 모를겁니다. 김추자는 그 특유의 콧소리와 히트곡, 춤사위를 흉내라도 내지, 문정선은 설명하기도 참 힘듭니다. 그렇지만,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문정선을 좋아했습니다.


허스키하면서도 시원시원한 목소리, 연예인 같지 않은 소박하고 순수한 외모,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다가오는 그녀의 노래를 아직도 저는 찾아듣습니다. 1970년에 데뷔해서 '나의 노래', '보리밭', '파초의 꿈' 등의 히트곡을 남겼지만, 일찍 무대를 떠나서 아쉬웠던 가수. 특히 '나의 노래'는 처음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들을 때마다 가슴이 콕콕 찔리는 것처럼 아주 섬세한 슬픔이 밀려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들었지만 애늙은이였던 저는 거의 다 이해했습니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것이며, 사랑은 늦가을처럼 쓸쓸한 것이란 걸 어렸지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총론보다는 각론이 맞아야 평화롭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소소한 일상이 어긋나면 실체적인 공간에서는 솔로보다 더 외롭죠.


특히 이 노래의 남자처럼 '철없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을 정말 외롭게 만듭니다. 이상을 쫓는 건지, 자기 세계에 빠져있는 건지, 잘난 척하는 건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 남자는 자기 자신이 더 중요한 사람일겁니다. 여자는 이 남자가 전부였지만 남자는 여자가 일부인거죠. 사랑하다사랑하다, 이해하다이해하다 지쳐, 결국은 떠나고 마는 여자. 자신을 '낙엽' 같다고 말하기까지 그 사랑은 얼마나 비참했을까요.


이렇게 슬픈 노래를 문정선은 칙칙하지 않게 담담히 불렀습니다. 동영상을 찾아보니 최근까지도 전혀 흔들림 없이 노래를 정말 잘하네요. 문정선, 저는 오래오래 기억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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