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가을에 들려오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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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가을에 들려오는 노래
  • 관리자
  • 승인 2017.11.2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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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유행가」(36) ㅣ 조휴정 PD(KBS1 라디오 PD,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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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도 가물가물한데 수십년 전 일들이 소소한 부분까지 또렷이 기억되는건 왜일까요? 당시의 스토리와 풍광이 합쳐져서 마치 사진처럼 남아있는데 저는 주로 비오는 날에 대한 기억이 그렇습니다. 대학시절, 야구 응원 갔다가 10대1로 대패하던 날, 경기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불놀이야'를 목이 터져라 부르던 날도 비가 쏟아졌는데요 울적한 마음보다는 차라리 시원했습니다.


내리는 비에 패배의 아픔을 씻어냈다고 나할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부천 영안실까지 가는 내내 비가 왔었는데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가던 새벽길에도 비가 내리더군요. '비'는 그래서 저에게는 '슬픔'이고 '그리움'입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닌가봅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도 '비'는 결정적 장면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모티브니까요. 가요는 더합니다. 봄비, 여름비, 가을비, 겨울비, 계절마다 다 등장하고 새벽 비, 낮 비, 저녁 비, 밤비, 시간마다 감정이 다 다르게 표현됩니다. 가을비에 관한 노래도 꽤 많이 있지만 저는 예전부터 이 노래를 들으면 무작정 마음이 아파옵니다.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1978년, 이두형 작사, 백태기 작곡)'입니다.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 흐르는 세월따라 잊혀 진 그 얼굴이 왜 이다지 속눈썹에 또다시 떠오르나.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 갔나.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 이는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이렇게 찾아 해매일 만큼 그리울 사람이라면 헤어졌을까싶지만 확실히 비오는 날에는 감정이 과거로 달려가죠. 최헌, 1967년 데뷔했고 1970년대에는 조경수, 윤수일과 함께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슈퍼스타였습니다. 세 명 중에서 저는 최헌을 좋아했는데 선량하고 밝은 서글서글한 모습이 편안한 동네오빠 같아서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노래를 부를 때는 어찌나 핏대를 올리며 힘겹게 부르는지 늘 조마조마했습니다. 매우 심한 허스키 보이스인데다 노래 마디마디가 부드럽게 넘어 가는게 아니라 뚝뚝 꺾어지니 듣는 사람도 덩달아 목에 힘이 들어가곤 했는데 바로 그런 점이 최헌의 매력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최헌 씨와 방송을 꽤 많이 한 편인데요, 당시에 이미 50대 후반으로 인기의 뒤편으로 물러선 상황이었지만 무척 유쾌하고 소탈했습니다. 역시 같은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였던 하일성씨와는 중학교 동창으로 '절친'이어서 70년대 추억담을 듣는 것만으로도 웃다가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하일성씨의 증언(?)에 의하면 최헌씨는 10대 때부터 음악을 했고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정말 많았다고 합니다. 20대 초반, 최헌은 이미 스타였는데 하일성씨에게는 나름의 빽(!)이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운동을 하던 하일성씨가 먹성 좋은 친구들과 최헌이 출연하던 나이트클럽에 자주 가서 외상으로 술을 엄청 먹으면 그때마다 별다른 불평 없이 그 술값을 모두 내줬다는 겁니다.


자기 친구 중 최헌 씨가 가장 착하다고 했었는데 이제 두 분 다 뵐 수가 없게 되었네요. 그 당시만 해도 두 분 모두 무척 건강하셨고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그렇게 일찍 우리 곁을 떠날지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말이죠. 201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신은 몰라', '순아', '앵두', '구름나그네', '어찌합니까', '세월'등 참 좋은 노래를 많이 불렀고 번안곡 '카사블랑카'도 큰 사랑을 받았던 최헌, 대표적인 가을노래 '오동잎'은 이맘때쯤이면 라디오에서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오동잎 한잎 두잎 떨어지는 가을밤에”는 그리운 사람들이 더 생각납니다. 언제 이별할지 모르는 인생, 곁에 있을때 소중하게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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