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하는 시간과 의두연마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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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하는 시간과 의두연마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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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1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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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튼교무의 정전산책 (106) ㅣ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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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교전」중 '정전' 좌선법의 단전주의 필요에 보면 “좌선하는 시간과 의두연마하는 시간을 각각 정하고, 선을 할 때는 선을 하고 연구를 할 때는 연구를 하여 정과 혜를 쌍전시키나니… ”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에 대해 부연하시기를 “다양한 선의 방법 가운데에서 단전주(丹田住)법을 취하여 수양하는 시간에는 온전히 수양만 하고 화두 연마는 명랑한 정신으로 적당한 기회에 기틀을 따라 가끔 한 번씩 연마하라.”고 권하시며, “이 방법이 의두 깨치는 데에 있어 침울한 생각으로 오래 생각하는 것보다 도리어 우월하다.”고 하십니다.(대종경 수행품 14장)


여기서 문제는 화두와 의두 그리고 성리와의 관계입니다. 의두와 성리는 화두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본시 의두와 성리는 초기교서인 「수양연구요론」의 '문목(問目)'에서분화된것으로, 「육대요령」에서 문목과 성리로 나뉘었다가 「불교정전」에서 의두와 성리로 명칭 변경됩니다.


다만 내용에 있어 「불교정전」의 '의두'에는 「정전(원불교교전)」의 '의두'에 제시된 '과거 불조의 화두 중에서'라는 대목이없고, 「불교정전」의 '성리'에는 '천만 화두'라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천만 화두'를 「정전」에서는 '우리의 자성 원리'로 변경됩니다. 또한 「정전」의 '의두요목' 20조에는 화두가 다수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의두 요목에 화두가 포함된 것입니다.


이를 종합해 본다면 화두는 의두의 조목도 되며 성리의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즉 화두를 분석하여 연구하면 의두가 되는 것이며, 화두를 들어 그 의심을 직관해 들어가면 성리가 되는 것입니다. 의두요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정전」 '좌선법' 단전주의 필요에서의 '의두연마'는 의심나는 제목을 연구하여 사리간 명확한 분석을 얻는 '의두'와 화두를 들어 성품을 반조하는 '성리'까지를 포괄합니다.


「정전」 단전주의 필요에서는 화두선을 배척하고 단전주 선법만 취한 듯이 보입니다. 화두에 근본적으로 의심이 걸리지 않는 사람은 선에 취미를 얻기 어렵고 화두만 오래 계속하다보면 기운이 올라 상기병(上氣病)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단전주 선법이 효과적이며, 간화선은 사람에 따라 임시의 방편이므로 일반적으로 시키기는 어렵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단전주 선법은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옥지(玉池)에서 나는 물을 많이 삼켜 내리면 수화(水火)가 조화되어 원기(元氣)가 충실해지고 심단(心丹)이 되어 능히 수명을 안보하게 되니 선정상이나 위생상이나 일거양득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단전주 선법의 장점을 말한 것이지 화두선의 방법을 배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소태산은 화두를 통한 반조선을 '성리'의 방법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단전주 선법을 중심으로 하되 화두를 들고 좌선하는 법(서품 19장)도 기틀에 따라 적당한 시간에 연마하라는 것입니다.


즉 단전에 마음과 기운을 주하여 적적성성한 무분별의 입정에 들고, 출정한 후명랑한 정신으로 사리간 의심나는 의두를 연구하여 밝게 분석하든지 또는 의두요목이나 화두를 궁구하여 그 알고자하는 의심에 직입하여 일체의 사념이 달라붙을 수 없는 동시에 '오직 알고자하는' 의심만 역력한 무분별의 지혜를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좌선 후의 의두연마는 의두와 성리 공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좌선하는 시간과 의두연마하는 시간을 각각 정하고, 선을 할 때는 선을 하고 연구를 할 때는 연구를 하여 정과 혜를 쌍전시키라.” 한 것은 단전주 좌선으로 적적성성한 자리에 그쳐있어 분별의 동(動)에도 떨어지지도 아니하고, 좌선 후에는 기틀에 따라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에 의심나는 문제를 명확하게 분석하든지 또는 그 의심 당체를 직관하는 공부로 무분별의 지혜를 밝혀서 공적의 정(靜)에도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동정(動靜) 없는 진여성(眞如性)을 체득하라는 것입니다.(「정전」 단전주의 필요)


소태산 대종사는 만일 좌선에만 편중하여 지혜를 밝히지 아니하면 사지가 게을러지고 마음이 침묵에 빠져 선(善) 짓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대자대비심을 멀리 떠나 세상에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고 경책하고 있습니다.(「불교정전」 단전주의 필요)


핵심은 정할 때는 선(단전주 좌선)을 하고 출정 후 동할 때는 연구(의두연마)를 하되 자성의 정혜가 쌍전되도록 협응하고 반영하여 공적에도 빠지지 아니하고 분별에도 떨어지지 않는 동정 없는 진여성을 단련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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