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년] 불단을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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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년] 불단을보내며
  • 관리자
  • 승인 2018.01.01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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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웅 교도(창순, 둔산교당, KAIST 원불교 교우회, 행아웃 교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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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배경에 검은 동그라미.

골든 서클에 익숙해져있던 나는 그 소박함과 정직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대학교 첫 해를 보내고 과원회 (KAIST 교우회) 회장을 맡게 된 10년 전, 동아리 방에 새롭게 정착한 일원상 불단의 첫 인상이었다.


불단의 고향은 충원회(충남대 교우회) 동아리방이었다. 충원회가 불교 동아리와 방을 나누어 써야 했던 시절, 불교 불단과 각각 벽면 한쪽씩을 맡아 법당을 지켜온 유서 깊은 불단이었다. 충원회가 새 동아리방에 새 일원상을 봉안하던 추운 겨울날, 대학생 교화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음을 믿는 한 대의 트럭이 목탁 소리의 근원을 찾아 동으로 동으로 2km를 옮겨와서 새 캠퍼스에 정착하니, 이것이 그 과원회 불단이다.


불단과 동아리의 궁합은 꽤나 훌륭했다.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다던 작은 동아리가 6분의 지도교무님을 모시고 10년의 역사를 더 이어갔으니 말이다. 그 속에는 훌륭한 법연들을 비롯하여 9번의 대각국수 나눔 잔치와 과원회 20주년, 염주 만들기 등의 학내 홍보활동, 각종 법회와 정기훈련 등 즐거운 추억들이 있었고, 천주교와 불교 동아리를 초대하여 종교동아리 연합설명회를 주최하기도 하였다.


80여개 동아리가 100장씩 보고서를 써내던 동아리방 재배치 심사 때 10위권의 우수한 성적으로 동아리방을 지켜내고, 경쟁에서 밀려난 동아리들에게 정기모임 장소를 할애해 준 것도 뿌듯한 기억이다. KAIST는 (라이벌인 포항공대와는 달리) 학내에 일원상을 봉안한, 전국에 20여개, 충청권에 단 둘 뿐인 캠퍼스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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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이는 과거형이 되었다. 줄어드는 회원 수 속에 동아리방 유지는 힘겨운 일이었고, 우리는 더 이상 학교 동아리 연합회에 등록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동아리방을 포기한 것이다. 임계치를 이제야 넘어선 것일 뿐, 그동안 애써 모른 척 했을 뿐, 텅 빈 동아리방을 소수 인원이 열정과 사명감만으로 지켜내야 하는 어려움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국 대다수의 원불교 동아리들이 겪고 있던 일이다.


청소년 교화가 어렵다는 말은 10년 전에도 들었지만 지금은 그 때와 비교해도 더욱 어려워졌고, 언제부턴가 우리는 동아리에 신입생이 없는 것을, 법회 날 법당이 비어있는 것을 당연시하기 시작했다. 청소년 교화의 어려움은 KAIST만의 것도 아니다. 불교 동아리가 진즉에 짐을 싸고 나간 걸 생각하면 원불교만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랬듯이, 남이 힘든 것을 안다고 우리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학부부터 대학원 생활까지, 지난 10년간 나를 키워준 정든 불단은 또 한 번 트럭을 타고 새 교화지를 찾아 나섰다. 동아리방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 해야 했던 부담감을 내려놓고, 과원회는 내년부터 별도 공간에서 교무님을 모시고 오순도순 법회를 볼 것이다. 사람에 집중하고 친밀한 문답을 나누기에 더 좋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떠난 불단은 새 교화지에서, 남은 후배들은 이곳 캠퍼스에서, 모두가 따뜻한 봄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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