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칼럼 | 끝말과 애도의 품격이 있는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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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 끝말과 애도의 품격이 있는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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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31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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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경 교도 (서울교당) 문화콘텐츠컴퍼니 스푸마토 대표 (본지 신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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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의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분홍과 빨강 장미, 은은히 흐르는 음악 그리고 다양한 장면의 사진이 돌아가는 모니터…. 마치 출판기념회나 칠순잔치의 풍경같지만 아니다. 7년 전 어느 장례식 풍경이다.


“나 죽으면 가진 옷 중에 제일 예쁜 옷으로 입고 와야 해. 절대 울고 짜고 하지마.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러니 장례식도 경쾌하게 치르면 좋지 않겠어? 난 핑크나 빨강처럼 예쁜 게 좋아. 하얀 국화꽃 대신 분홍 장미를 장식하고 음악도 탱고나 내가 자주 듣던 거로 틀어줘.”


해외 소설이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파마머리가 최신 트렌드였던 1970년대에 단발머리 커트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한국 미용계의 대모'로 우뚝 선 그레이스 리가 생전에 지인들에게 자신의 장례식에 대해 당부한 말이다. 일흔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레이스 리의 장례식은 고인의 유언을 받든 가족에 의해 생전의 유쾌한 그를 꼭 빼닮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레이스 리 선생의 장례식 풍경은 매스컴에 소개되고 다른 장례식장의 조문객이 구경할 정도로 특별했다고 한다.


즉, '나다움의 끝말'을 남기고 주도적으로 몸을 떠난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연한 '흰 국화'가 아닌 '나는 분홍 꽃과 빨강 장미, 탱고를 틀어달라!'는 그의 죽음에 대한 주체적 능동성과 떠남에의 담대함, 유쾌함에 매료되었다. 죽음에의 사색을 통해 삶에 대한 겸손함과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관계들과 나누는 삶의 가치가 뜨거워짐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타자의 죽음과 나의 삶은 동시에 이어져 연결되고 있다. 떠나보내지만 그 이어짐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플랫폼으로서의 장례식이 가능함을 느끼게 했다.


장례식, 장례문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장례라는 지난한 의식을 치르며 고인을 떠나보내는 것일까. 고대로부터 행해온 장례식은 시간과 공간을 거치며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지만 결국 본질은 하나가 아닐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육신의 할 일을 마친 이를 잘 떠나보내고 함께 호흡하고 미워하기도 사랑하기도 했던 고인을 애도하고 기억하며 몸의 이별을 하는 의식이 장례식의 원형일 것이다.


거대 장례 업체들의 산업화된 장례식을 다녀오면 죽음의 의식이 컨베이어 벨트 산업의 아이템으로서 존재하는 것 같아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많아진다. 최근 유럽에서 일어나는 고인을 한 사람으로 대우하는 것, 두려움은 줄이고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장례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포피 퓨너럴(Poppy's Funerals)'의 새로운 장례문화 조성 운동에 관심과 공감이 일었다.


장례식을 포함한 장례문화는 살아온 삶의 궤적을 일치시키는 통로이며 고인이 극대화되는 최전선의 마지막 표면적 무대라고 생각한다. 죽은자는 사회로부터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니라 산 사람과는 다른 모습을 지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계속 존재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생사는 일여(一如)이니 오직 변화일 뿐이라는 소태산 대종사의 생사관을 떠올리며 묵직한 엄숙함과 경건한 천도재의식에 시대의 흐름을 반영시킬 수 있는 여백이 일정 부분 허용이 된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인생의 마지막, 망자를 존엄하게 떠나보내려는 작고 따뜻한 새로운 장례 문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장례식장은 슬픔에 억눌린 공간이 아니라 남겨진 자들이 적극적으로 장례의 주인공인 망자를 회고하고 추억하는 공간이 되고, 저마다 가슴에 담고 있는 이야깃거리를 꺼내어 풀어내며 애도의 감정을 표현하며 앞으로 '나의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의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임종 직전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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