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상징이 아닌 사랑의 공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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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상징이 아닌 사랑의 공간이 되길
  • 관리자
  • 승인 2018.02.0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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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유행가」(41) ㅣ 조휴정(수현, 강남교당) KBS1 라디오 PD,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윤수일의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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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지만 최근 들어 친구들과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주로, 누구는 무슨 아파트를 샀는데 가격이 얼마나 올랐더라는 내용인데 유유상종이라고 저나 제 친구들은 부동산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결단력도 없어서 부러워만하지 야무진 결과는 하나도 없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아파트 값에 예민해지고 돈돈 했나 한편으로는 부끄럽지만 평생 모은 재산이 아파트 한 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입니다. 남산에 올라가서 시내를 바라보면 숨막힐 정도로 많은 아파트가 비슷한 모습으로 쭉쭉 뻗어있건만 어디 사느냐에 따라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에 모두들 내 아파트 값은 더 오르길 바랍니다. 저 역시 누구네 집에 놀러가도 이 아파트는 얼마일까, 궁금증이 생기고 제가 사는 아파트가 더 잘되길 바라니까요.


그런데 며칠 전,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윤수일의 '아파트(1982년 윤수일 작사 작곡)'를 들었습니다. 수천 번은 더 들었을 그 노래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을 보는데, '와' 영화가 따로 없는 겁니다. 그때 본 아파트들의 불빛은 정말 로맨틱하고 포근해보였습니다. 그렇죠. 아파트는 '윤수일의 아파트'였죠. 국민응원가로 어디서든 다 같이 신나게 부를 수 있는 윤수일의 '아파트'는 지금처럼 돈 덩어리로 보이는 삭막한 아파트가 아니었죠.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아파트는, 집은, 이렇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따뜻한 공간인데, 그날 들은 윤수일의 '아파트'는 새삼 깊이 와 닿았습니다. 이렇게 오래 사랑받는 노래를 만든 윤수일을 어렸을 때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나비 넥타이를 매고 트로트풍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올드해 보였고 유치한 마음에 잘생기고 예쁘면 어쩐지 실력은 없을 거라는 편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름다워', '떠나지마', '환상의 섬', '아파트', '토요일 밤', '제2의 고향', '숲바다 섬마을', '터미널'등의 히트 곡을 모두 본인이 작사 작곡, 연주까지 한 실력파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인종, 오토바이 엔진 음, 파도, 갈매기 소리 등 적절한 효과음을 센스 있게 사용해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들어도 매우 감각적입니다.


울산 출신답게 바다를 모티브로 한 노래도 많고 '환경', '산업화' 문제에도 관심을 갖는 등 주제의 폭도 넓습니다. 기타 연주도 대단해서 몇 년 전 프로그램을 같이 했던 이택림 씨는 “윤수일 앞에서는 기타를 꺼내지 않는다”라고 하더군요. 그때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 그 늦은 시간에도 연습실로 가는 윤수일을 보며 어렸을 때 잘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괜히 싫어했던 것이 어찌나 미안하든지요.


그렇게 노력하기에 최근에 발표한 '라디오 러브(Radio Love)'만 들어봐도 녹슬지 않은 윤수일의 감각과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거겠죠. 젊었을 때의 윤수일은 미남가수의 대명사였지만 제가 보기엔 지금의 윤수일이 훨씬 멋있습니다. 열심히 진정성 있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사람 특유의 여유와 지성과 내공이 모두 드러나니까요. 더불어 우리의 아파트도 욕망의 상징이 아닌 사랑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윤수일의 '아파트'가 머릿속에서 들려옵니다. 40년 가까이 우리와 함께 해준 참 고마운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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