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 공부를 위한 당부 | 1. 판단하는것이아니다(非思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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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 공부를 위한 당부 | 1. 판단하는것이아니다(非思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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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2.26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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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처음 만나는 명상(28) ㅣ 박대성 교무(본지 편집장, 길용선원 지도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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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무수히도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선택에는 무수히도 많은 가치 판단들이 담겨있습니다. 그러한 판단들은 곧 습관으로 굳어지게 되고 하나의 에너지로 변화하게 자리 잡게 됩니다.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무수히도 많은 판단(망상)을 거듭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것은 (나에게) 좋은 것, 어떤 것은 (나에게) 나쁜 것, 이와 같이 기계적으로 끊임없이 꼬리표를 붙이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선 공부의 첫 발을 잘 때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我相, ego)라는 색이 칠해진 안경을 벗고 객관적으로 자신과 주위를 그저 바라만 보는 것, 그것이 “이 자리가 곧 성품의 진체이니 사량(思量)으로 이 자리를 알아 내려고 말고 관조로써 이 자리를 깨쳐 얻으라(대종경 성리품 31장)”고 하신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입니다.


제가 처음 좌선을 배우던 당시에 많은 스승들이 일관되게 가르치신 것 중에 하나가 '생각에 속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생각에 속지 않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이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으면 또 다시 그 생각에 빠져 속아버린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어느 때에는 환희롭고 신비한 체험이 와서 그 체험을 놓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자신을 볼 수 있었으며 번뇌 망상에 발목이 잡혀 조금도 앞으로 전진 하지 못하는 자신에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 꼬리를 무는 퇴굴심은 좌선 그 자체에 대한 회의를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이러한 갖가지의 마음작용 자체보다 이 작용에 대한 나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주와 합일을 하던 번뇌에 붙잡히던 어떠한 경험이 내게 오더라도 그러한 경험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근본적인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좌선공부를 하는 여러분께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드리는 첫 번째 당부입니다.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가 좌선이나 명상에 들어 있을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어떤 경계를 대할 때, 매순간 마다 자동적으로 올라오는 시비이해에 대한 모든 판단을 평가하거나 선택하는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모든 명상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입니다. 또한 삼학 중 '정신수양'에서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하고, “밖으로산란하게하는경계에 끌리지 아니”한다는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제가 명상을 지도할 때 자주 던지는 질문 중에 하나가 “그 현상은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라는 물음입니다. 이렇게 물어볼 때 선객들은 대부분 순간적으로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당황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 머릿속이 급격한 속도로 회전 하면서 '좋은 것과 나쁜 것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라는 이중구속(doublebind)에 갇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일반적으로 “그 현상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그냥 그 현상일 뿐입니다”라고 답변을 드립니다. 이는 의두·성리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좌선을 하다가 최근에 본 영화 생각이 계속 마음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은 일반적으로 선을 방해하는 나쁜 현상이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냥 '영화에 대한 생각'일 뿐입니다. '좋다', '나쁘다'는 판단이 자리잡게 되면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수렁에 한 발을 깊게 내딛게 되는 것입니다. 그 판단을 내려놓아야 '영화에 대한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 훨훨 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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