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을 우러른 두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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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을 우러른 두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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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0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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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교당, 대종사 친견제자 전성완 원로교무 초청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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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교당(교무김지원) '원불교 열린 날 법 잔치'가 4월 29일(일) 100여명의 교도들이 함께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법 잔치는 소태산 대종사 친견제자인 전성완 원로교무가 설교를 통해 대종사와 초기교단의 생생한 모습을 전했다.


“대종사님께서 대각을 하신 뒤 팔산님(김광선 선진)에게 “형님, 내가 측간(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무서워서 못가겠으니까 같이 가십시다”라고 했더니 팔산님이“다 큰 사람이 뭐가 무서운가”라고 하셨다. 그때가 저녁 8시였는데 갑자기 어두컴컴한 세상이 환하게 밝아졌다, 팔산님이 깜짝 놀라서 '이게 무슨 일인가'했더니 대종사님께서 “내가 지금 발광(發光)을 하고 있는 중이요”라고 하셨다. 팔산님이 생전 처음 듣는 얘기라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하고 의심을 했다. 그러다 길용리에 동학(東學)을 믿던 사람들에게 “도통(道通)을 하면 사람이 빛을 발할 수 있냐”고 묻자. 그들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제야 비로소 팔산님은 대종사님께서 도통을 하셨다고 믿게 됐다”는 일화를 전했다.


한문에 능통한 팔산 선진은 그 뒤에 “대종사님께서 시(詩)를 부르는데, 자꾸 글자가 막힌다. 그리고 대종사님이 “그거 그렇게 쓰는 게 아니요”라고 지적해 깜짝 놀라셨다”며 “그 전까지 동생이라 알던 대종사님을 이후에는 선생님 나중에는 아버지라고 부르셨다”고 증언했다.


아울러 “대종사님은 높은 자리에 계시는 임금 같은 분이 아니고 일반 교도들과 더불어 즐거워하고, 슬퍼하신 지도자이셨지, 절대로 높은 자리에서 군림 하신 스승이 아니셨다. 이것은 대종사님의 평등사상을 직접 실천하신 것이고, 종교인으로 사람에게 계급을 매기지 않고, 누구나 똑같이 대우해주셨던 정신”이라고 밝히며, “ 이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와 바로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민주주의의 '민'자도 없었는데, 벌써 민주 사상을 가르쳐 주신 조치 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한 교단 최초의 견성제자로 인가받은 김기천 선진과의 일화를전하며, “ 대종사님의뒤를 이으실만한 큰 어른인 삼산님이 열반하셨다. 새벽 5시에 총부 식구들이 전부 대각전에 모여 불도 켜지 않고 조용한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한참 있다가 대종사님께서 “흑”하고 울음을 터트리셔서 일반 대중도 일제히 울음을 터트렸다”며 “도인(道人)이라고 슬프나 기쁘나 변함없는 것이 아니라, 기쁠 땐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땐 함께 슬퍼하셨다. 우리는 기쁘면 기쁨에 매달리고, 슬프면 슬픔에 매달려 그것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데, 대종사님께서는 19살 된 둘째 아드님을 잃으시고도 자녀의 임종을 끝까지 못보고 자리를 뜨셨다. 그게 낮 12시였는데, 오후 2시에 대중에게 생사(生死)에 대한 법문을 하셨다. 우리 같으면 도저히 생각도 못 할 일이다. 모든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매달리지 않는다. 이것이 성인과 우리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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