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성과 주착심 그리고 기억
상태바
분별성과 주착심 그리고 기억
  • 관리자
  • 승인 2018.06.04 04: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길튼교무의 정전산책 (117) ㅣ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방길튼교무님.jpg

『정전』「정신수양의 요지」에서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정신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수양이란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하며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하는 것이라 명시하고 있습니다.


# 기억과집착
분별성은 분별하는 성질이며 주착심은 고착된 패턴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를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또는 집착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선입견, 고정관념, 집착은 생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은 기억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기억이 없다면 인간은 개체의식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제를 기억 못한다면 오늘의 나라는 개체성은 없을 것이며 미래의 기대도 없을 것입니다. 기억이 있기에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희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염려로 어느 때는 기대로 어느 때는 추억으로 어느 때는 잊고 싶은 악몽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억은 한 편으론 디딤돌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기억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디딤돌도 걸림돌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기억이 걸림돌이 될 경우를 분별성과 주착심이라 합니다.


# 부재의식과고통
그렇다면 기억의 메카니즘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의 사유에 따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억은 고통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기억이 기쁨도 주지만 견딜 수 없는 슬픔도 줍니다.


예를 들어보면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다시 볼 수 없을 때 그 부재(不在)가 주는 고통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줍니다. 다시 만날 수 없고 다시 볼 수 없다는 느낌은 그만큼 그것이 있었을 때 느꼈던 행복을 더 부각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랑했던 애인과 이별했을 때 알콩달콩했던 기억이 더 아른거릴 것이며, 부모님을 여의었을 때 부모의 잔소리마저도 그리워지고, 자식을 일찍 보낸 부모는 그 또래의 아이를 보면 더 보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시려올 것이며, 건강을 잃은 사람은 건강할 때의 모습이 더 사무치게 그리워질 것입니다.


부재하다는 의식은 기억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부재로 인한 고통도 기억과 관련된 것입니다. 없다는 의식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동시에 그것이 지금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생기는 의식입니다.


탁자 위에 컵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 나갔다 와 보니 탁자 위에 컵이 부재 할 때 컵이 없다하는 것입니다. 만일 친구가 같이 놀려왔다면 그 친구는 탁자만 보게 될 것입니다. 컵이 없다는 부재의식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없다는 기억이 있다는 기억보다 무엇 하나 더 많다는 것입니다. 있다는 기억의 전제 위에 없다는 생각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점이 중요합니다. 무엇인가가 없다는 부재의식은 우리의 마음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없어진 것에 사로잡힐 때 현재에 충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재의식에 집착할 때 현재에 깨어있지 못하게 되어 현재를 누릴 수 없게 됩니다. 발밑에 피어있는 소담한 꽃을 느낄 수도 없고 주변의 동료들의 하소연에 공감할 수도 없고 심지어 지금 먹고 있는 밥맛도 모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수양해야 합니다.


정신은 불생불멸의 성품과 생멸의 마음을 가로질러 관통하는 중심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기억에 물들지 않는 성품자리이면서 또한 기억을 잘 사용하는 자리입니다. 기억이전의 텅 빈 자리이면서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기억하지 않을 것은 기억하지 않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즉 유념할 자리에서는 유념하고 무념할 자리에서는 무념하라고 합니다.(인도품 16장)


분별성과 주착심은 집착된 기억이며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억에 물들지 않는 기억이전 자리에 바탕하여 기억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작용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이요 정신을 수양하는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