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전등을 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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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전등을 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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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22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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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무의 ‘유림산책’儒林散策 (23) | 박세웅(성호) 교무(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HK교수)

박 교무의 유림산책.jpg

어린 시절에 “너는 좀 대담해야된다.”라는 말을 듣곤 했다. 좋게 말하면 조심성이 많은 것일 테지만, 그분들의 눈에는 소심하게 보였나 보다. 이후 필자는 맹자의 호연지기라는 말을 듣고 이 말을 참 좋아하게 되었다.


어느 날 제자 공손추가 물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 합니까?” “말하기 어렵다. 그 기(氣)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바르게 잘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천지의 사이에 꽉 차게 된다.”(『맹자』「공손추장구상」: 何謂浩然之氣니잇고 曰難言也니라. 其爲氣也至大至剛하니 以直養而無害면 則塞于天地之間이니라.)


맹자는 호연지기를 물어보는 질문에 맨 처음 난언(難言) 즉 말하기 어렵다고 답한다. 이는 맹자가 잘 몰라서 말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 형상과 소리의 징험이 없기 때문에 언어로써 형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에 정자(程子)는“이 한 마디 말씀을 보면 맹자(孟子)께서 실제로 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지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하였다. 마치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라고 표현한 것과 같다. 지극히 크다는 것은 애당초 한량이 없는 것이요, 지극히 강하다는 것은 굽히고 흔들릴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천지(天地)의 정기(正氣)로서 사람이 얻어 태어난 것이니, 그 특성이 본래 이와 같다고 말한다.


대산종사는 광산에는 광맥이 있듯이 일원 대도에도 그 맥이 있는데 우리도 이 기운을 찾아 기르고 힘을 얻어야 한다고 말씀하며, 그 기운 중 하나가 호연지기라고 하였다. 대산종사의 말씀에 따르면 호연지기란 '천하를 막힘없이 툭 트고 온통 감싸는 기운'을 말한다. 대산종사는 이 기운이라야 원망하고 해하려는 마음과 막히고 구애된 기운을 다 털어 버리고 온 인류와 일체중생을 감싸주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대의 화두 중에 하나인 적폐청산(積弊淸算). 개인·가정·사회·국가가 피차간에 모두 막힘없이 툭 트고 온통 감싸는 이 기운을 길러야 다시금 소심한 복수가 되지 않고, 소소한 원망이 쌓이지 않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호연지기를 어떻게 기릴 수 있을까? 맹자가 말씀한 방법 중에 하나는 존야기(存夜氣)이다. 만물이 낮에 자라는 것 같으나 실은 밤에 자라는 것이며, 봄에 자라는 것 같으나 실은 겨울에 자라난다고 한다. 맹자의 존야기는 이 같은 밤기운을 기르고 성품을 보존한다는 뜻이다. 대산종사는 “우리사람 가운데에도 만물이 소리를 내듯이 마음 가운데에서 만 가지 생각이 나서 다 다르게 난다. 욕심에 따라 이 사람은 여기에 끌리고 저 사람은 저기에 끌리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모든 소리가 다 구적한 자리를 기르고 일만시비(一萬是非)가 공(空)한 자리를 기르는 것이 존야기이다.”라고 말씀한다. 이는 유교에서도 수양의 최고경지를 존야기로써 얻게 했음을 의미한다. 존야기를 다른 말로 하면 곧 선(禪)이다. 그러므로 존야기란 반드시 밤에만 그 기운만을 길러야 된다는 의미보다는 일상생활 중에 반드시 비우는 시간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대종사는 '상시응용주의사항'에서 석반 후 살림에 대한 일이 있으면 다 마치고 잠자기 전 남은 시간이나 또는 새벽에 정신을 수양하기 위하여 염불과 좌선하기를 주의하라고 당부하였다. 일화에 따르면 대종사는 저녁이 되면 꼭 전등을 끄고 존야기를 하였다고 한다. 대산종사도 '저녁 시간은 내 시간이다. '하고 항상 존야기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우리도 저녁이 되면 불필요한 전등과 핸드폰을 끄고 존야기를 통해 호연지기의 기초를 닦는 공부를 날마다 해나가야겠다. 이러한 적공이 쌓이는 가운데 개인과 세상 속 막히고 구애된 기운이 다 털어지고 나아가 파란고해의 일체생령들과 막힘없는 하나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야들아! 본성 끄슬겠다. 외등 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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