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왜 만들었어요? 세상엔 종교도 많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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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거면 왜 만들었어요? 세상엔 종교도 많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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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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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 사상 기행 - 29 | 천지은 교도 (원불교출판사 편집장, 남중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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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어르신을 만나면 “아이고 젊은 양반이 이런 곳까지 뭣하러 왔어? 밥 안 먹었으면 이리와 앉아. 밥은 함께 먹어야 맛있지”라는 말을 격의 없이 주고 받았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개개인의 물질적 풍요보다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안녕을 으뜸으로 삼는 정서가 예전에는 마을마다 넘쳐났었다. 그 마을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2017년 가을, 내가 한국 토착사상을 기행 하던 중 증산 강일순이 천지공사를 펼쳤다는 동곡약방 골목을 찾았다.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뭘 그렇게 찍어요? 뭣 하는 사람인데?”라며 꼬치꼬치 물었다. 말투가 퉁명스럽기는 했지만, 인적 드문 마을에서 만난 반가움에 이때다 싶어 나도 여러 가지를 물었다.

“여기가 증산 선생님이 약방을 하셨던 곳인가요? 그런데 왜 문은 닫혀 있죠? 증산이 기거하셨던 김형렬 선생 댁은 어딘가요? 근방에 그분의 시비가 있다던데요. 혹시 아세요?”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증산 상제가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뭘 그렇게 묻고 찾아다니느냐”면서 한바탕 사납게 쏘아붙였다. 그러고 보니 동곡약방 골목 위쪽 이층집 옥상에 망루가 보였고 아주머니 두어 명이 앉아서 나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내가 문이 잠긴 동곡약방을 보며 사진을 찍자 그 가운데 한 분이 부리나케 내려왔던 것이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증산이 죽은 후에 여러 종파로 나뉘었다는 것도 알았고, 동곡약방을 둘러싸고 증산법종교와 대순진리회 사이에서 토지 분쟁이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대놓고 서로를 헐뜯으며 '진짜는 자신들'이라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에게 증산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모악산 대원사에서 49일 동안 자신과 맞부딪치며 욕심과 성냄, 음란과 어리석음을 떠나 천하를 바로잡는 도를 깨우쳤던 분이다. 자기 앞에 놓인 가혹한 여정을 절감하고 '시대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만 골몰했던 증산은 자신의 가르침을 오직 '만고에 없는 무극대도'라고만 하고 세상을 향한 공사(公事)를 시작했다. 부귀나 종교적 권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교세를 불리는 일에 힘을 쓰지 않았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이후 줄곧 금산사 아래 동곡 마을을 중심으로 약방을 열고 병든 중생을 구하겠다는 뜻을 세운 것이다.

그런 동곡 마을이 이미 인간의 속물적 욕구에 비위를 맞추며 타락해가는 중이다. 패를 가르며 종파적 이해에 골몰해 분란을 야기하는 집단들의 패악이 끊이지 않고, 돈이나 자리를 놓고 추악한 암투를 벌이는 세태다. 거기에는 '증산'이라는 의사도 없고, '약방'도 없었으며 '환자'만 있었다. 그 사람들한테서 나는 한국 토착사상의 폐허를 보았다.


'이럴 거면 왜 만들었어요? 세상엔 종교도 많은데….'


이 까칠한 물음을 다시 던질때가 왔는지 모른다. 다시 100년을 맞은 원불교에게도 이 질문은 마찬가지다. 왜 만들어졌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제 우리가 알고 세상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이야말로 개벽을 말할 때가 아닌지, 폐허가 된 마을의 골목에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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