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곳에는 꿈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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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곳에는 꿈이 있을 수 없다
  • 천지은 교도
  • 승인 2019.04.17 11:35
  • 호수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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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 사상 기행 33
삼밭재 마당바위. 소태산이 11세~15세 기도를 올린 곳으로 ‘삼령기원상(蔘嶺祈願相)’이 탄생한 곳이다. 지금은 순례코스로 정비돼 영광국제마음훈련원 뒤쪽 임도를 통해 차량으로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삼밭재 마당바위. 소태산이 11세~15세 기도를 올린 곳으로 ‘삼령기원상(蔘嶺祈願相)’이 탄생한 곳이다. 지금은 순례코스로 정비돼 영광국제마음훈련원 뒤쪽 임도를 통해 차량으로도 쉽게 오를 수 있다. 

각설하고, 자식 이야기 좀 해야겠다. 학업성적은 바닥이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2학년 7반 27번 27등’이다. 요즘은 한 반에 30명도 안 된다. 참담하지만 자식한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녀석에게는 확고한 꿈이 있었다.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다. 학생 수가 적다 보니 졸업생의 사진과 장래 희망 등을 스크린에 띄우고 일일이 졸업장을 전달했다. 아들 순서가 되었을 때 ‘장래 희망 배우!’가 떠올랐다. 이 느닷없는 문구에 적지 않게 놀랐다. 심지어 “네가? 배우를 한다고?”라며 콧방귀까지 뀌었다. 보통 아이들의 경우 그런 희망은 오래지 않아 체념으로 이어지게 마련이기에 잠시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곧 잊었다.

다시 이 이야기가 불거진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들의 경우는 남달랐다. 진짜 황정민이나 마동석 같은 배우가 되는 게 꿈이라면서 진지하게 털어놨다. 그것도 몇 년을 집요하게 탐색해 왔다는 것이다. 갑자기 분주해졌다. 인구 30만 소도시에 이 아이를 가르쳐줄 선생이 있을까? 그렇다면 이 일을 장차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고민스러웠다. 그러나 아들은 스스로 자신이 다닐 연기학원을 찾아내 우리 앞에 내밀었다. ‘너를 가르칠 스승이 없으니 꿈을 포기하라’는 구차한 변명 따위는 애당초 꺼낼 수도 없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삼 년째 아들의 연기학원비를 꼬박꼬박 대고 있다.

다소 장황하게 개인사를 꺼낸 이유가 있다. 어린 소태산이 삼밭재에 오르내리는 것을 지켜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아버지 박성삼 때문이다. 도사가 되겠다는 허무맹랑한 꿈을 좇아 급기야 호랑이가 물어갈지도 모를 첩첩산중 삼밭재 마당바위까지 어린 자식이 혼자 오르내릴 때 부모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1901년, 그 시절 구수산 삼밭재가 어떤 곳인가. 길룡리 집에서 약 십 리 길, 깎아지른 비탈길, 성벽 같은 언덕, 수백 길의 절벽,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고 등성이도 가파르고 험해 힘센 장정들조차 쉽게 오르지 못한다는 곳을 어린 소태산은 애오라지 산신님을 만나려는 욕심 하나로 찾아다녔다. 소태산은 산신을 만나 의두를 풀겠다는 생각으로 구수산 삼밭재 마당바위에서 기도를 시작해 만 4년 동안 계속했다.

소태산은 15세에 결혼하고도 생활이나 살림, 글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구도만을 위해 노력했다. 부친은 그 뜻을 알고 19세인 1909년에는 삼밭재에 초당을 지어 기도하도록 뒷바라지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보통 부모라면 자식들이 출세해 가세를 일으켜줄 것을 내심 기대한다. 몇 년 전까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안전한 곳에는 꿈이 있을 수 없다. 내가 토착사상을 공부하고 성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자식에게는 자식의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자식이 상위 1% 안에 들든 나머지 99%로서의 삶을 살아가든 그것은 자식의 몫이다.

박성삼은 도사가 되겠다는 아들의 허무맹랑한 꿈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자신의 기준으로 자식을 바라보지 않는 것, 자식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응원하는 것, 그 길이 다소 느리고 멀리 돌아가는 길일지라도 묵묵히 기다려 주는 것, 박성삼은 이것을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후천개벽 세상의 자녀교육이라 믿는다. 소태산의 아버지가 급기야 삼밭재에 초당을 지어줬듯이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교육 말이다.

천지은 교도 / 원불교출판사 편집장, 남중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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