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고 모두 풍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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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고 모두 풍경이 아니다
  • 천지은 교도
  • 승인 2019.04.18 22:47
  • 호수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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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 사상 기행 34
익산성지 대각전(大覺展). 원기20년(1935) 건축했다. 전면 중앙에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인 ‘일원상’을 최초로 정식 봉안하였고, 1943년 5월 16일 소태산 대종사는 최후의 생사법문(生死法門)을 설했던 곳이다. 또 총부의 심장인 대각전에 일제는 군대를 주둔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역사적으로 고초를 겪은 건물이기도 하다. 

[한울안신문=천지은 교도] 살다 보면 갑자기 앞일이 막막해지고 불안할 때가 있다. 어디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다. 눈물을 들키지 않고 목 놓아 통곡하고 싶을 때, 나는 총부 대각전을 찾는다. 대각전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텅 비어 고요하다. 법당 전면에 모신 일원상의 불단은 단정하다. 청정한 일원의 진리와 만나는 순간 요동치는 마음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는다. 나는 이곳에서 우주와 호흡하며 몸의 생명과 언제나 떠나지만 되돌아가야 하는 집을 만나곤 한다.

익산 총부는 교단 초창기 간고한 생활 속에서 건설됐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을 압도하는 건축물은 없지만, 평범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 간판을 처음 내건 본원실, 대종사의 거처로 지어진 금강원, 대종사뿐만 아니라 2대 정산종사, 3대 대산종사가 열반한 종법실, 집회소였던 공회당, 대종사의 집필 장소였던 송대 등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모두 일본식 주택건축 영향을 받은 목조 구조의 개량 한옥들로, 10~30평 규모로 소박하다.

그와는 별도로 정문 왼편 언덕에 대각전(大覺殿)이 있다. 이 대각전은 원불교 역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 건축물이다. 법신불 일원상이 공식적으로 처음 봉안된 곳이자 소태산이 최후의 법문을 설한 곳이기도 하다.

대각전은 처음부터 대법당의 목적으로 지어져 1935년 준공됐다. 84평 단층 규모로, 주로 목조로 이뤄졌다. 기둥 사이에 대나무 등으로 외를 엮어 그 위에 시멘트와 흙으로 채우고 기둥까지 모르타르로 덮은 일본식 벽 구조를 취했다. 그러면서도 외관은 단순화된 서양식 건축양식으로 지었다. 두 개로 나누어진 출입구 상부에는 캐노피를 설치했고 처마 끝에는 물 홈통을 설치했다. 동시에 지붕은 대량 생산이 용이한 시멘트 기와로 네 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우진각을 형성해 놓았다. 일본식, 서양식, 한국식이 절충된 것이다.

각별한 의미를 갖는 건축물인데도 별다른 장식이나 상징물이 없다. 정갈할 뿐이다. 단지 출입문 위 3개의 현판에 쓰인 ‘정신수양(精神修養)’, ‘사리연구(事理硏究)’, ‘작업취사(作業取捨)’가 눈에 띈다.

대각전은 성과 속의 단절적, 대립적, 이분법적 공간 구성이 아닌, 참여자들이 신앙과 수행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원불교 일원상의 진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건축 공간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교단 내부에서는 원불교의 이상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고민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00년 역사를 가진 종교로서 독자적인 양식의 건축물이 나와야 한다는 그런 고민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인간의 손길이 닿을 적마다 옛 정취도, 자연의 생태계도, 인간의 마음 씀도 바뀌어버리는지 간혹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안타까울 때가 있다. 게다가 세상의 관심이 아직도 남의 문화에 대한 대책 없는 선망과 모방에 쏠리다 보니 원불교 문화는 방향을 잃고 누구보다도 인간적이었던 소태산의 정신을 읽어내지 못하는 상태가 돼 있다. 더구나 흔한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습성까지 있어서 가식의 화려함에 곧잘 현혹돼 평범하고 소박한 가운데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쉽게 놓쳐버린다. 아름답다고 모두 풍경이 아니다. 울림이 있어야 비로소 풍경이 된다.

[04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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