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할수록 절박하고 절박할수록 본질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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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할수록 절박하고 절박할수록 본질을 추구한다
  • 천지은 교도
  • 승인 2019.05.22 15:52
  • 호수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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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 사상 기행 35
송대는 원기26년(1941) 가을에 소태산 대종사의 수양과 '정전' 집필을 위해 세워졌으며, 대종사 열반 후 원기 34년(1949) 4월 교단의 기관지인 '원광'의 산실이 됐다. 이곳은 정산종사 열반(원기47년) 후 성탑이 조성될 때까지 임시로 성해를 안치했던 곳이며, 대산종사는 새 종법원 신축을 전후해 몇 년간 이곳에서 기거하며 숱한 법문을 남겼다.
송대는 원기26년(1941) 가을에 소태산 대종사의 수양과 '정전' 집필을 위해 세워졌으며, 대종사 열반 후 원기 34년(1949) 4월 교단의 기관지인 '원광'의 산실이 됐다. 이곳은 정산종사 열반(원기47년) 후 성탑이 조성될 때까지 임시로 성해를 안치했던 곳이며, 대산종사는 새 종법원 신축을 전후해 몇 년간 이곳에서 기거하며 숱한 법문을 남겼다.

익산성지에 있는 송대는 이제까지 내가 봐 온 종교건물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것이 지닌 형태상 특징과 주변 소나무숲이 어우러져 이루 말할 수 없이 담박하다. 교단사적 배경, 소태산 대종사의 정신이 오롯이 밴 송대를 보고 있자면, 아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일체의 장식이 배제된 오직 본질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영혼과 기도의 집이 바로 송대인 것이다. 더구나 정산종사와 대산종사가 이곳에 머물렀던 체취와 만나게 되면 누구든 감동과 놀라움 속에서 송대의 가치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송대는 중앙총부 북편 소나무 숲속 대종사성탑 좌측에 위치한 건물이다. 원불교문화재관리대장을 살펴보면, 이 건물은 원기26년(1941) 가을 소태산 대종사의 휴양과 <정전> 집필을 위해 지었다고 전한다. 가난할수록 절박하고 절박할수록 본질을 추구했던 소태산의 사상이 집으로 드러난 곳이 송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대의 지붕은 시멘트기와로 올렸다. 토기기와를 올릴 형편이 안 됐을 것이다. 건물의 네 면에 모두 지붕면이 있는 우진각을 구성했으며 26.6㎡(8.5평)의 3칸 집으로 외관은 미닫이 유리문이다. 건축 당시 남쪽에 화장실도 함께 지었다고 한다.

소태산 대종사 열반 후 한때 중환자들의 간병실 역할도 했으며, 원기34년(1949)에 정산종사의 유시를 받아 교단 기관지인 원광사를 설립했는데 편집실을 송대에 두었다고 한다. 이때 정산종사는 <원광> 창간호에 ‘일원지광 편조시방(一圓之光 遍照十方)’이라는 휘호를 내렸다.

원기56년(1971) 2월 수위단회에서 소태산 대종사가 친히 거처하던 종법실, 금강원, 송대의 건물은 앞으로 영구 보존하기로 결의함에 따라 송대가 영구 보존건물이 됐다. 그 후 원기66년(1981) 3월에 송대 앞 정원공사를 했으며, 원기85년(2000) 1월 사적 및 유물관리위원회에서 건물 안쪽을 내부 수리해 기도실 등의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결의했다. 당시 수리작업을 거쳐 현재까지 중앙총부 기도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의 자취가 곳곳에 널린 교단치고는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가까이하려는 노력이 남달랐다고 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한국전쟁으로 없어진 것도 있고, 특유의 원만함으로 물건 간수에 신경을 덜 쓴 까닭도 있지만, 아무래도 생활이 곤궁하고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는 통에 공부와 살림을 제대로 못한 탓이 큰 것 같다. 이런 판국에 또 각종 기념사업을 치르면서 뒤집어엎은 것들이 어디 한둘인가.

이제 원불교 문화는 100년이 넘는 세월의 저쪽에 위치했다. 민족사적, 문화사적, 문명사적 변곡점을 지난 이 고색창연한 유산이 오늘에 빛을 발하리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단의 유산들이 두고두고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한가운데 ‘우주의 한 점’처럼 송대가 있다.

<천자문>은 ‘천지현황 우주홍황’으로 시작한다. 우주라는 글자는 모두 ‘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옛사람들은 우주의 시작을 집으로 봤을 수도 있다. 집은 조화이다. 그 집이 조화를 잃게 되면 생명이 살아갈 터전을 잃고 떠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우주를 ‘코스모스(cosmos)’라고 불렀다. 송대의 담박한 아름다움이란 바로 영혼의 집, 기도의 집, 본질의 집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만일 송대가 대웅전처럼 웅장하고 장엄하게 꾸며진 집이었다면 그것은 소태산의 정신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건물이 됐을 것이다. 원불교는 불상(佛像)을 모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모시는가? 일원상도 불상(佛像)의 한 형태라면, 이 질문에 스스로들 답을 내리기 바란다.

천지은 교도(원불교출판사 편집장, 남중교당)
천지은 교도(원불교출판사 편집장, 남중교당)

 

 

 

 

 

 

 

 

 

 

 

 

 

 

[5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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