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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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는 마음
  • 박세웅 교무
  • 승인 2019.06.13 10:26
  • 호수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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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웅 교무의 유림산책

6월1일 원불교에서는 대종사 이하 모든 선진과 선조를 추모하는 대재를 모신다. 대재를 올릴 때면 평소 스승을 모시는 마음을 반조하게 되고, 내 안에 살아계신 임을 향한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우리를 위해 오셨다 우리를 위해 가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논어>를 읽다 보면 공자가 하는 말씀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다. 두 사람은 성군(聖君)의 대명사로, 두 사람이 다스렸던 시대를 요순시대라고 해 후세에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용어가 됐다.

어느 날 제자 자공(子貢)이 “만일 백성에게 은혜를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면 인(仁)하다고 할 만합니까?”라고 물어보자 공자는 “어찌 인을 일삼는 데 그치겠는가? 반드시 성인일 것이다. 요순께서도 이에 있어서는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셨을 것이다”고 답한다. 또 제자 자로(子路)가 군자에 대해 묻자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니,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함은 요순께서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겼다”고 답한다.

이처럼 공자는 말을 할 때 요순에게 연원을 대고 모시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대산종사는 불상의 머리 위에 작은 부처가 여러분 조각돼 있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하기 이전에 여러 부처들이 이끌어 주시고 호렴해 줬음을 잊지 않고 언제나 사모하시며 연원을 대고 보본(報本)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대종사 역시 자신의 말씀이라 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하며 꼭 선성(先聖)들에게 연원을 댔다.

공자나 부처 그리고 대종사와 같은 분들은 자신이 주세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마음 가운데 스승을 모시고 살았다. 이분들이 스승에게 바치는 정성은 쉽게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그것도 한두 분만 모신 것이 아니니 스승을 모시는 표본이며 심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도 이처럼 영생토록 스승을 모시며 살아갈 수 있을까? 대산종사는 “대종사께서는 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으라 하셨나니 그 뜻을 잘 새기면 스승님들을 영생토록 모시는 길이 열린다”고 했다.

도가에서는 무엇보다 그 스승과 제자가 있어야 한다. 다 줄 수 있는 사람이 거기에 있느냐, 또 그 제자로서 다 바칠 수 있는 그 스승이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그러므로 대산종사는 “자기가 학문을 많이 하고 인격을 갖추는 것도 요긴한 것이지만 자기가 다 바칠 수 있는 스승이 있느냐, 그 법을 다 줄 수 있는 제자가 있느냐가 제일 중요한 문제이고 그것 하나 맞아지면 그 회상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늙도록 다 몸을 바치고 다 주고 하였으니 교단 만대에 꽃이 필 것이다”고 했다.

스승들은 남김없이 다 바치고 아낌없이 다 전해주고 갔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 각자에게 스승을 모시고 스승이 전해준 법을 위해 신명을 바칠 의무와 책임이 부여됐음을 한시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시는 마음

1. 모시는 마음은 진실한 마음이다. 거짓이 녹고 참이 점점 충만해진다.

2. 모시는 마음은 공경의 마음이다. 드디어는 모든 공경을 스스로 받을 수 있다.

3. 모시는 마음은 겸손의 마음이다. 끝없이 오르더라도 피해롭지 않다.

4. 모시는 마음은 선(禪)의 마음이다. 객기가 가라앉고 정기(正氣)가 충만해진다.

5. 모시는 마음은 불공(佛供)의 마음이다. 점점 사사불공(事事佛供)이 되고 드디어는 불공을 스스로 받을 수 있게 된다.

6. 모시는 마음은 법(法) 받는 마음이다. 드디어는 스스로 법을 끝없이 생산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진리와 스승과 심우(心友)와 처처불에 신맥(信脈)을 연하여 모시고 살자.

-좌산 이광정 상사-

박세웅 교무

6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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