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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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천지은 편집장
  • 승인 2019.06.13 10:34
  • 호수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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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 사상 기행 (完)
소태산대종사성탑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정신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원기28년(1943) 대종사 열반 후 제자들이 대종사의 성해를 유리관에 보존하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들이 성인들의 이적을 두려워하여 화장토록 함으로써 장례식도 성대히 치르지 못하고 성해를 조실에 안치했다가 49재 후 익산시 북일면 금강리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그 후 6년이 지난 원기34년(1949) 4월 25일에 중앙총부 북쪽 송림 속에 조성하고 이안했다. 현재 성탑은 황등 화강석으로 5층 탑신과 개석을 쌓은 749㎝ 높이로 전통적인 석탑 양식을 수용하면서 연꽃, 일원상 등의 문양이나 형태를 통해 원불교적 특징을 표현하고 있다.

소태산 박중빈을 만난 것은 법당 흑백 사진에서다. 동그란 안경테 너머 깊은 눈길로 언제부터인가 말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짧고 단정한 머리에 둥그런 얼굴은 어디에도 성자의 모습임을 짐작게 하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의 눈길 깊은 곳에는 국가도 민족도 이념도 아닌 오직 ‘만 중생을 살리고자 하는 온전함’만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말 없는 응시, 그 서늘한 눈길은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내가 삶의 길을 걸어가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주어진 길을 가는 것과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것이다. 주어진 길은 어떤 가치가 나에게 부여하는 요청에 대한 자각과 응답이라면, 가고 싶은 길은 내적 욕망과 욕구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사상 기행’을 하게 된 것은, 어느 순간 운명처럼 나에게 주어진 길이 되었고, 가고 싶은 길이 되고 말았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서 지나간 역사와 한 사람의 사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더욱더 많은 공부를 요구했다. ‘어쩌자고 한국 토착사상이란 말인가’ 나의 부족함과 미약함으로 이 일을 시작한 것을 후회한 날도 있었다. 막막했던 그날로부터 벌써 3년이 쌓였다. 흑백사진과 초상화밖에 본 적 없는 ‘한국의 사상가들인 최제우, 김항, 강일순, 박중빈’의 이름을 몸 한구석에 담아두고 살았다. 이 이름들은 왜 이리 어려운 것인가. 곰곰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무력하게 만든 그들의 사상이 지닌 경이로운 생명력 탓이 아닐까 싶다. 하여 내가 오늘의 자리에서 그들을 끄집어 세상에 선보인 작업은 그들이 묵묵히 감당해낸 긴 고통의 무게에 미력하나마 동참하고자 하는 작은 마음때문이었다.

드디어 연재의 마지막 여정에 올랐다. 오래 고심하여 나는 소태산 대종사 성탑 앞에 섰다. 소태산이 살아있다면, 그는 자신의 성탑이 서는 것을 과연 찬성했을까? 성자로서 누리는 명성과 제도화된 이미지를 수락하며 늙어가는 소태산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아픈 세계에 대해 절망하고 분노하며 맞닥뜨려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의 살아생전의 삶이 고통으로 단련된 민중에게 희망의 출구였듯이 그의 현재도 그러하리라 본다.

삶도 죽음도 모두 현재화된 그의 사상과 정신과 삶이 ‘소태산 대종사 성탑’이라는 몸을 얻었다면 이는 소태산의 몸과 마음의 고향으로서 연장일 수밖에 없다. 대종사 성탑이 있는 익산 성지가 여전히 살아있는 몸으로 움직여야 하는 당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소태산과 만날 우리는 반드시 교단도, 출가도, 재가도 그 희망을 현실화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연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그중 어느 원로교무님의 말씀이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 있다.

“대종사님 말씀 평생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살았어요. 그래도 마음이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몰라요. 하루에도 몇 번씩 특신급이 되었다가 또 항마위가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보통급으로 뚝 떨어지더라니까요. 그만큼 정신개벽은 쉽지 않아요. 그런데요, 꼭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지내온 날을 찬찬히 돌아보면 조금씩 변화하고 달라졌어요. 나를 달구고 깨뜨리고 부셔서 만난 대종사님의 교법은 어제의 남루한 나를, 오늘은 버젓한 나로 만들어 놨잖아요. 지은님은 교단의 인재예요. 속으로 ‘내가 인재는 무슨 인재’라는 그런 생각일랑 하지 마세요. 진실로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고 깨닫는다면 그리 생각 마시고 지금처럼 대종사님 제자 노릇 잘해 주세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기억하며 이제 연재를 마친다. 내 삶에 감사한다.

천지은 원불교출판사 편집장

*그동안 연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6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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