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이 팥소가 되듯이 우리의 마음도 녹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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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이 팥소가 되듯이 우리의 마음도 녹아난다
  • 박선국 교도
  • 승인 2019.08.21 23:22
  • 호수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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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마음공부1
[앙, 단팥인생이야기] 감독: 가와세 나오미, 키키 키린, 나가세 마사토시, 우치다 카라

스토리) 무뚝뚝한 성격의 센타로는 도라야끼를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한다. 이 가게를 자주 찾는 중학생 와카나는 왁자지껄한 친구들 사이에서 조용하기만 하다. 벚꽃이 만개한 어느 봄날 토쿠에라는 이름의 할머니가 이 가게를 찾아와 일하겠다고 한다. 이제부터 세 인물의 감춰진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다음 문장부터는 영화해설과 함께 영화의 핵심내용이 나온다. 혹 영화를 먼저 보고 싶은 분들은 영화감상 후 다음 글을 읽기를 권장한다.)

일본어 앙 또는 앙꼬는 우리말로 팥소를 의미한다. 도라야끼는 팥소와 이 팥소를 감싸는 두 장의 부드럽게 구운 얇은 반죽으로 만들어진 일본 전통 단팥빵이다. 영화 제목이 말해주듯 앙(팥소)은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의 역할을 담당한다. 팥이 달달한 팥소가 되고 반죽과 하나가 되어 맛있는 도라야끼가 되는 과정에 인간들의 희로애락을 녹여내어 도입부는 답답하고 무겁게 시작하지만, 후반에 가면서 따듯하고 희망찬 메시지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센타로는 도라야끼를 만들어 팔지만 팥소를 만들 줄도 모르고 도라야끼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와카나는 도라야끼의 팥소에 맛을 느끼기보다 그저 실패한 구운 반죽에 만족하는 것 같다. 그런데 토쿠에는 도라야끼의 생명은 단팥소에 있으며, 그 팥소는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팥소에 원료인 팥을 극진히 모셔야 한다고도 한다. 왜일까?

토쿠에에게 팥소는 삶 그 자체이다. 토쿠에가 팥소를 만드는 모습은 마치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과 비슷하다. 팥을 여러 번 씻고, 티를 골라내고, 물에 불리고, 오랫동안 삶고, 찬물에 떫은맛이 사라지도록 천천히 우려내고, 팥과 설탕이 잘 어울리도록 기다리는 -이것을 토쿠에는 젊은 남녀가 처음 만나 친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 모습이 원불교에서 말하는 심전계발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팥소에 원료인 팥은 우리 모두에게 갊아 있는 불성에 비유할 수 있겠다.

세 명의 주인공은 각자가 직면한 현실(토쿠에; 한센병 때문에 가족과 헤어져 어린 시절부터 격리시설에서 50년을 은둔하며 지내온 외로운 여성, 센타로; 불의의 사건으로 교도소에서 청년 시절을 보내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남자, 와카나;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사는 소녀)을 처음에 부정하고 피하려 하지만 마침내 그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함으로써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 토쿠에는 외롭지 않은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센타로는 자신만의 도라야끼를 만들어 노상에서 팔기 시작하며, 와카나는 새장을 나와 자유롭게 나는 카나리아처럼 자신이 원하던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피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이유가 나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때 해답이 나온다는 것을 시사한다. 서로를 알지 못하던 그들은 각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면서 토쿠에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할머니-아들-손녀 같은 혈연보다 더 끈끈한 모습을 보여준다. 혈연도 중요하지만 불연이 지중함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 같다.

영화는 “우리는 이 세상을 보고 듣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다”라는 토쿠에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감사를 드리고 있나요?”

돈암교당 박선국 교도

8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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