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치를 없앨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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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치를 없앨 수 있습니까
  • 라도현 교도
  • 승인 2019.10.31 11:22
  • 호수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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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참회게의 앞부분입니다.

내가 지은 모든 악업은 다 비롯함이 없는 탐진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중생이 겪는 모든 고통의 근원은 탐진치라는 뜻이죠.

“…또한 그 반대로 탐진치가 승(勝)하고 보면 그곳에서 그 육신을 받아 무량겁을 통하여 놓고 무수한 고(苦)를 얻을 것이니라.” (<정전> 천도법문 중에서)

탐진치에 끌려서 살았던 사람은, 미래 생에 한없는 세월 동안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을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무서운 삼독심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선 먼저 탐진치가 일어나는 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탐진치는 스스로 생기지 않으며, 반드시 대상[境界]에 끌려가 들러붙는[住着] 마음 때문에 일어납니다.

마음이 끌려가지 않는데 탐욕이 생길 리가 없고, 대상에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는데 화가 날 리 없습니다. 또한 자기에 대한 애착이 없다면 치심이 생길 수 없습니다. 때문에 탐진치를 없애고자 하면 먼저 주착을 내려놓는 것이 수행의 공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주착을 어떻게 내려놓느냐 하는 것이지요. 만약 자신의 성품을 깨친 사람이라면, 언제든 자성에 회광반조하여 스스로 분별주착이 없는 마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 자성반조는 시간이 걸리지 않으며, 그야말로 찰나에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견성 하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착 없는 마음으로 돌리기 위해서 방편적인 수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경계를 대하기 전에 마음을 텅 빈 허공처럼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불과 좌선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마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내 마음이 허공 같아지면 어떤 경계를 만나더라도 거기에 끌려 주착 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마음을 아주 성성하게 하여 마치 투명한 유리처럼 깨어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저절로 마음과 경계의 구분이 사라지고, 안팎이 없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인식하는 모든 것에 주착 되지 않습니다.

세 번째 방법은, 경계를 대할 때 반드시 자기 마음도 함께 보는(아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이 안팎을 동시에 보게 되면, 그 어떤 경우든 마음이 경계에 끌려가지 않기 때문에, 주착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위 세 가지는 바로 자성에 회광반조하면 나타나는 현상으로써, 이들은 실은 셋이 아니라 동시적인 현상입니다. 즉, 우리 성품은 경계를 대하면 바로 위와 같이 작용합니다.

이처럼 탐진치는 주착으로 인해서 생기며, 만약 마음이 텅 비면 이것을 ‘마음이 멸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록 악인이라도 빈 마음에는 탐진치가 없기 때문에, 이것을 ‘죄성(罪性)이 공하다’고 합니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謂眞懺悔).’

 

 

1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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