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에 눈물이 흐르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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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에 눈물이 흐르던 날
  • 구자숙
  • 승인 2019.11.2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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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 천일야화5
사드 발사대가 2차 추가로 배치되던 전날 저녁, 경찰은 소성리 마을회관부터 진밭교까지 에워싸며 평화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사드 발사대가 2차 추가로 배치되던 전날 저녁, 경찰은 소성리 마을회관부터 진밭교까지 에워싸며 평화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그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입맛이 없어 나눠주던 빵도 못 먹고 쫄쫄 굶으며 화장실에 가는 걸 줄이기 위해 물도 마시지 않고 버티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밤 12시, 그들은 -아들 또는 손자 같은 경찰들- 화이바를 썼다. 밤하늘에 높이 솟아올랐다가 알알이 부서지던 조명탄이 신호가 되어 그들의 진압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우리 대신 울어주는 하늘의 눈물을 온몸으로 맞으며 저항했다.

우리는 팔짱을 굳게 꼈다. 뜯겨나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기 위해서였다.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뜯겨나가고 이제 몇 줄 남지 않았을 때 내 옆 교무님이 조용히 기도하듯 노래를 부르셨다. 그 소리가 두려워하던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이윽고 그들이 우리 앞으로 왔다. 옆 자리 교무님의 치마가 들려져서 두 다리가 쑥 드러났다. 그 상태로 버티다 들려나가고 나에게 다섯 명이 둘러쌌다. 다섯 명의 무장한 경찰들이 역시 무장한 다리로 뺑 둘러싸고 있어 숨 쉬기도 어려웠다. 두 다리를 들고 끌고 나오니 그 와중에도 “내 신발!” 하고 외치니 “나중에 찾아준다”고 했다. 신발뿐만 아니라 모자도 벗겨지고 없었고, 얇은 비닐 비옷은 갈갈이 찢어졌다. 

누군가 “해가 뜬다”고 했다. 보니 정말 해가 뜨고 있었다. 비도 그쳤다. 

아침이 되어 들어오는 사드를 막으려 온몸으로 밀어대도 우리 아들 같기도 하고 손자 같기도 한 경찰들의 완력을 밀어댈 수 없어 사람들은 이제 울었다. 들어오는 미국 무기들을 바라보며 “양키 고 홈”만 외칠 따름이었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아침이 나오자 이렇게 슬픈데도 밥이 들어가는구나 하면서 또 울었다. 내 생애 가장 슬펐던, 그리고 무서웠던 그날, 9월 6일에서 7일까지 1박 2일 밤.

그때 내 옆에 있었던 그 교무님을 아마 다시 만나면 못 알아 볼 것이다.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으니... 다만 그때 나직이 부르던 그 노래가 가끔 내 마음을 흔들어 댄다. 나만큼 교무님도 그때 무서웠을 것이다. 작은 종교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셨을 거다. 신이 정말 있는지 묻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노래로 달래시면서 자신의 신심을 다잡고 다시 신에게 기도할 수 있었으리라. 

진밭평화교당 1000일 기도 날이 돌아오고 있다.

"구도길을 열라"며 맨바닥에 주저앉아 밤을 새우고 그곳에 천막을 치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무엇이 달라졌는가 물어보면 사실 할 말이 없을 수도 있다. 믿음과 간절함이 미국의 강한 힘을 이겨내지 못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 김천, 성주 사람들뿐만 아니라 원불교 쪽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세월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패배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지키려는 노력은, 그리고 작은 나라지만 스스로 자존심과 주권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은, 아니 무엇보다 사랑하는 김천의 땅과 자신의 가족과 후손들의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은, 비록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보지 못했더라도 고귀한 것이기에 나는 원불교 진밭평화교당의 천일 기도에 한마디 보태고 싶었다. 

그래도 뚜벅뚜벅~!

글/ 사드배치반대김천시민대책위 기록팀 구자숙 (은퇴 교사)

 

♣ 2017년 3월11일에 시작된 소성리 진밭 평화기도가 오는 12월 5일 1000일을 맞는다. 천일의 기도 적공을 통해 축적한 평화의 몸짓과 평화의 바람을 한울안신문 온라인뉴스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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