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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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말
  • 이여진
  • 승인 2020.01.08 13:27
  • 호수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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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길을 가고 있었는데 어떤 젊은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볼펜을 하나 쥐어 준다. 엉겁결에 받아 들고 보니 포스트잇에 무언가를 적어 붙이는 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좀 일찍 나간 터라 모임 시간에 여유도 있었고 예쁜 볼펜도 공짜로 주는데 염치없이 그냥 지나치기가 그래서 참여하기로 했다.

일명 ‘초록은 늘리고, 빨강은 줄이고’ 행사였다. 내용인즉 2020년 새해에 듣고 싶은 말과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적는 것이다. 새해를 여는 연초인지라 사람들은 듣고 싶은 말은 열심히 하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은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열심히 적어 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나도 적어보려 하니, 딱히 떠오르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남들이 쓴 글을 쭈욱 훑어보았다.

빨강 색지에는 ‘왜 항상 그 모양이니? 찌찔하기는, 넌 좀 빠져, 재수 없어, 정말 한심하다, 그것밖에 못하니, 정말 어이 없다니까,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해), 되는 일이 없는 인간이로구나, 넌 어쩔 수 없다니까’ 등이 붙여져 있었다. 
초록 색지에는 ‘요즘 좋아보인다, 와 이뻐졌는데, 용돈 올려줄까? 실수 좀 해도 괜찮아, 젊어진 비결이 뭐야? 뭐 그럴 수도 있지, 전보다 나아졌는데, 난 항상 너 믿어, 우와! 멋진데, 넌 최고야, 니가 제일 좋아, 언제나 널 응원할께, 정말 사랑해’ 등이 적혀져 있었다.

글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빨강색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초록의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소 놀랐다. 직업이 교사다 보니, 또 맡고 있는 교과가 도덕, 윤리다 보니 소위 말하는 ‘지적질’을 많이 한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학생을 잘 되게 하려는 나의 의도와 달리 지적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지적은 때로는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된 언행을 인식하게 하여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대를 위축되게 하고 더 나아가 그를 화나게 만들 수도 있다. 특히 상대가, 지적하는 방법을 수용하지 못했을 경우 더욱 심한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전문적인 처방에 따른 명약이나 테크니컬한 의사의 따스한 손길만이 아니다. 상대를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칭찬하는 말은 사람의 기를 살려주고 힘나게 해주며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사람을 살리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칼이나 총만이 아니다. 비수처럼 가슴팍에 꽂히는 나쁜 말은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고 몸을 아프게 만들며 정신 또한 병들게 한다.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반기문 전 사무총장은 학창시절 영어 선생님 덕에 어린 시절 외교관의 꿈을 품을 수 있게 됐다고 회고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계기가 되어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됐고 결국 우리나라 외무부 장관을 거쳐 유엔의 최고 수장까지 오르게 됐다. “너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고 영어를 참 잘하니 외교관을 해서 우리나라를 널리 외국에 알리고 국익을 위해 봉사하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원기105년에는 사람을 살리는 말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상대에게 힘을 주는 격려의 말, 어려울 때 토닥토닥 위로하는 따뜻한 말, 장점을 잘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칭찬의 말을 하면서 말이다. 

 

1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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