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가득한 다양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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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가득한 다양한 세상
  • 허인성 교도
  • 승인 2020.02.18 19:50
  • 호수 11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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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가 교화다15

일체 만물은 다 공(空)하다. 이것이 대 자리라고 말하는 진리이다. 공한 그 자리에서 묘하게 나온다. 이것이 소 자리라고 말하는 현상세계이다. 자성이 공한 자리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를 마음이 나온다. 여기에는 선악미추가 따로 없다. 만법이 귀일하니 일귀하처리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돌아간 그 자리는 어디인고.

어떤 것은 아름답게 나오고, 어떤 것은 아름답지 않게 나온다. 분별이다. 분별이 없는 자리에서는 그냥 어떤 것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분별을 없앨 수 있을까? 분별없이 살 수 있을까? 분별없이 살 수 없다면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할까? 분별하는 것까지는 업을 짓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럼 주착은? 주착을 없앨 수 있을까? 주착 없이 살 수 있을까? 주착 없이 살 수 없다면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할까?

분별 주착의 결정체인 지금의 나를 바라본다. 나를 확장한 가족을 본다. 가족을 확장한 사회를 본다. 사회를 확장한 국가를 본다. 국가를 확장한 세계를 본다. 세계를 확장한 지구를 본다. 지구를 확장한 우주를 본다. 그리고 다시 나를 바라본다.

우리는 잠을 자야 하고, 식사를 해야 하고, 화장실을 가야 하며, 해야 할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중생도 부처도 다르지 않다. 그 속에서 혹은 은생어해로 혹은 해생어은으로 무량세계를 전개한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산다. 우리는 그것을 나투며 산다.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산 경전을 보아야 한다. 그 경전 속에는 법문이 가득하다. 무수히 많은 법문이 쏟아져야 건강한 도량이다. 콘텐츠도 다르지 않다. 일상이 콘텐츠 덩어리다. 콘텐츠 꺼리가 가득하다. 무수히 많은 콘텐츠가 쏟아져야 건강한 사회이다.

우리는 다양한 세상을 추구한다. 천편일률적인 세상이라면 살맛이 안 날 것이다. 그 다양한 세상이 살아 숨쉬는 우리 사회는 건강하다. 짧게 보면 어렵고, 슬프고, 힘들 수 있지만 길게 보면 다양한 세상이 주는 은혜는 말할 수 없이 크다. 내가 살아갈 여지를 만들어준다. 누구나 바라는 것을 추구할 수 있고, 누구나 하지 않는 것을 피할 수 있으며,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나 혼자서 만들어가는 세상은 다양하기 어렵다. 한 사람만 더 있어도 그 세상은 넓어진다. 거기에 한 사람이 더 붙으면? 한 사람이 아니라 수십, 수백, 수천, 수억 명이라면? 이 세상은 참으로 은혜로 가득차 있다. 사람만 해도 그러할진대 나를 둘러싼 이 천지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은혜를 보아야 한다. 그 속에 수많은 콘텐츠들이 가득하다. 우리는 그 보물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이 말은 유명한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이지가 한 말이다.

다양한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개체이다. 개인이다. 대중이다. 국민이다. 그러나 다양한 세상은 없다. 그냥 그런 것이 세상이다. 다양한 세상이란 개체가, 개인이, 대중이, 국민이 바라보는 세상이다. 우리는 그 세상을 마음껏 만끽해야 한다. 더불어 그 속에서 은혜가 샘솟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방법은 각자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수많은 성현들이, 수많은 전문가가 방법을 제시했고, 지금도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 찾도록 하자. 다양한 세상, 그리고 그 세상에서 무수히 많은 은혜가 나오도록. 무수히 많은 콘텐츠가 나오도록.

 

2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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