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영상 설교] 봄이 오면3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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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극복 영상 설교] 봄이 오면3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 한울안신문
  • 승인 2020.03.20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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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한덕천 서울교구장 세 번째 영상 설법
도가에서 나날이 살아나야 할 네 가지 마음

 

봄은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도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코로나가 주는 교훈을 얻을 것입니다.

봄을 자세히, 오래 보면 봄은 부지런함과 꿈과, 새로움의

메시지를 줄 것입니다. 봄의 산경전을 읽으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기회가 되기를 빕니다.

요즘 주위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들이 어려워지면서 우리의 하루하루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것을 찾아서 먼 길을 떠나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소중한 것은 이미 자신의 곁에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특별함에서만 소중한 것을 찾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보게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제한된 상태로 살게 되니 일상의 소중함을 저 또한 느끼게 됩니다.

“하루종일 봄을 찾아 다녔건만 봄은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닳도록 언덕 위 구름만 밟고 다녔네
돌아와 뜰 안의 웃고 있는 매화 향기 맡으니
봄은 매화 가지에 이미 무르익고 있었네”

이 글처럼 추구하는 대상에 따라 깨달음 혹은 행복, 소중한 가치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번 기회로 모든 사람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하루하루를 삶의 가치를 발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소중한 일상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도 우리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상이 다 무너져가는 [코로나19]의 세상을 다시 일상으로 되살리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동시에 ‘사회적 사랑' 즉 더불어 살아가는 합력으로 가능해질 것입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생각하면서 현각스님이 떠올랐습니다.

<만행>이라는 책으로 저를 감동하게 했던 현각스님 소식이 궁금했는데, 그분은 지금 독일에서 불일선원을 개원하여 서양에 불교를 포교하고 있었고, 어느 기자가 스님에게 한 질문이 인상 깊었습니다.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기억하는 불자들이 많더라. 제일 좋아하시는 경은 무엇인가?”

스님은 군더더기 없이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순간경!!"

이 커피 향을 맡는 순간, 재즈를 듣는 순간, 걷고 이야기하고 시장에 가는 모든 순간,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나누는 순간, 순간, 순간....“

순간순간의 우리 일상생활이 바로 최고의 경전이라는 말씀이기도 하고,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선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2020년의 봄을 온통 삼켜버린 코로나19의 이 난국을 평생 기억할 것입니다.

①이 우주는 서로 인과 연으로 얽혀있는 인연법칙으로 존재함을 깨달아 없어서는 살 수 없음을 이 세상이 자각하기를 염원하였고, ②모든 사람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 감사생활하기를 염원했다고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조병화 시인의 '해마다 봄이 되면'이라는 ③시를 빌려서 잃어버린 봄을 되찾고자 영상설교로 원기105년의 봄을 가꾸었다고 기억하고 싶습니다. 오늘 마지막 세 번째 연속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시의 세 번째 단락은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무 가지에서, 물 위에서, 뚝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면 우리 일상은 큰 축복입니다. 그래서 일상을 소중한데, 일상이 소중하려면 일상이 늘 새로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이는 일관되게 중생들의 일상성을 수행의 생생한 텃밭으로 삼으라”는 말씀이 생각나는데, 우리가 마음을 알고, 마음을 양성하고, 마음을 잘 사용하고자 하는 마음공부는 일상을 알아차림으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일상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도 고착화된 일상성에 떨어지면 또 망각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며 고해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종교 생활은 새롭게 거듭나서 늘 깨어있는 삶을 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제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어제보다는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어제보다는 좀 더 변화된 향상된 삶을 살기 위해서 종교 생활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거듭나야 합니다.

대산종사께서는 원기47년에 종법사가 되셨는데, 그 이전인 원기41년에 소개하셨던 법문은 수신강요와 대산종사 법어에 수록된 [도가에서 나날이 살아나야 할 네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이 법문의 원형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현재나 미래의 세상에는 산 종교라야만 자신도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전 생령(全生靈)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산 종교란 무엇을 이름인가 하면, 그 교단 내에 교도들이 많이 불어나고 교재 교산(敎財敎産)도 많이 불어나야 하겠지만 그것은 다만 한 부분에 속하는 문제일 것이오. 오직 그보다도 교도 각자의 마음 가운데에서 네 가지의 살아나는 마음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대산종사께서 추구하셨던 산 종교는 교도들의 마음이 살아나야 산 종교가 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대산종사께서는 종법사 33년동안 산 종교를 만들기 위해, 교도들의 마음을 살리기 위해 가르침을 주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종교의 본질은 외형의 확장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새로움의 기본은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며, 마음이 새롭게 살아날 때 삶은 새로워진다고 확신합니다.

대산종사께서는 나날이 살아나야 할 네 가지 새로운 마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신앙심(信仰心)이 나날이 새로 살아나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일원상 안에는 무궁한 묘리와 무궁한 보물과 무궁한 조화가 가득 갊아있는데, 그것은 깊은 신앙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고금과 동서를 통해서 변함도 없고, 다함도 없는 응현자재(應現自在)한 진리를 믿는 그 마음이 용솟음쳐 살아나는 것이 신앙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고금과 미래를 통해서 이 법이라야만 자기나 전 생령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낙도심(樂道心)이 시시 각각으로 살아나는 것이 신앙심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생을 통해 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버리고도 여한이 없을 만한 그러한 절실하고 돈독한 스승과 회상에 대한 믿음이 늘 살아나는 것이 신앙이 나날이 살아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흔히 우리는 이를 [4대불이신심]이라고 하는데 이 신심이 나날이 살아나야 산 종교가 될 것입니다. 산나무라야 봄기운을 받아 자라듯이 신 있는 사람이라야 법을 받는다고 하셨으니 신앙심을 새롭게 하는 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공부심(工夫心)이 항상 새로와져야 합니다.

“이 공부심 가운데에는 부처님같이 원만한 마음을 갖도록 공부심이 살아나야 할 것이요. 또는 부처님같이 원만한 지혜가 나타나도록 공부심이 살아나야 할 것이며 또는 부처님같이 원만한 마음을 쓰도록 공부심이 살아나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산종사께서 공부할 때 표준으로 “마음을 잘 쓰고 못 쓰는 데 따라 죄와 복이 좌우되는 것을 알아서 삼학 공부로 내 마음을 잘 쓰고 다른 사람 마음도 잘 쓰게 하는 것을 표준 잡을 것이요”라고 하셨듯이 삼학공부는 용심법의 비결이요, 비법입니다.

저는 살아가면서 평생 잊지 못하는 글귀가 있습니다. 선배에게 이끌려 처음 교당에 갔을 때 액자에 걸려있는 글귀가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내 무엇을 생각할꼬 / 도를 생각하리라
내 무엇을 말할꼬 / 도를 말하리라
내 무엇을 행할꼬 / 도를 행하리라.”  

강한 인상을 남겨준 이 글귀는 평생 좌우명이 되었고, 화두가 되었습니다. 도가 무엇일까 궁금함이 무의식 속에 잠겼고, 이 무의식은 삼학을 통해서 길을 찾았습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이는 일관되게 중생들의 일상성을 수행의 생생한 텃밭으로 삼으라”는 말씀을 다시 인용하는데, 삶이 늘 새롭게 하는 비결은 공부심을 놓지 않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삼학공부를 하다 보면 배움의 즐거움을 알 것이며, 깨달음의 기쁨을 알게 됩니다. 하루하루가 늘 새날이요, 선물임을 스스로 깨닫게 되며, 자신이 성장하는 기쁨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삼학수행은 만생령 부활의 원리요, 大道라는 대산종사의 교법에 대한 선언에 믿음을 세우시고 공부심을 늘 새롭게 합시다.


셋째, 공익심(公益心)이 항상 철저하고 새로와져야 합니다.

“이 공익심 가운데에는 설사 내 몸이 좀 괴롭고, 또 어떠한 해가 돌아올지라도 전 가족을 위해서 이(利)롭고 좋게 해주려는 공익심이 살아나야 할 것이요. 한 걸음 나아가 내가 괴롭고, 해로울지라도 전교단을 위해서 이롭고 좋게 해주려는 공익심이 살아나야 할 것이며,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내가 괴롭고 해로울지라도 전 세계를 위해서 이롭고 좋게 해주려는 공익심이 살아나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보호와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자리타해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19도 방송에 나오는 것을 보면, 자기 이익을 위해 마스크를 매점매석하고, 자기입장에서만 비난하고 원망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이런 이기적인 사람보다는 이타적인 공익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은 살맛이 있는 것이고, 아름답게 됩니다. 대구·경북지역에 달려간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없이 그 지역이 안정을 찾아갈 수 있었을까요? 대구 경북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힘내라]는 응원이 눈에 띄는데 세상이 아무리 말세라 해도 살맛이 나는 것은 공익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봉공회의 빨간밥차로 봉사활동을 하셨던 교무님들은 지금 철수하여 총부에서 자가격리를 하고 있으며, 마스크가 부족하다고 하니 매일 교구청에 출근하여 면마스크를 만들어가는 교도님들의 모습, 이런 공도자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넷째, 자비심(慈悲心)이 항상 철저하고 새로와져야 합니다.

“이 자비심 가운데는 전 가족 중에서 설사 미웁고 잘못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저 가족은 나를 버리고 미워할지언정 나는 절대로 저 가족을 미워하거나 버리지 않으리라는 자비심이 살아나야 할 것이요. 한 걸음 나아가 전 교도에 대해서 아무리 미웁고 잘못한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저 사람은 나를 버리고 미워할지언정 나는 절대로 저 사람을 버리지도 미워하지도 않으리라는 자비심이 살아나야 할 것이며,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전 생명에 대해서 저는 나를 버리고 미워할지라도 나는 조금도 저를 미워하지도 버리지도 않으리라는 자비심이 살아나야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감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대자비심입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는 저 태양보다 다습고 밝은 힘이 있나니, 그러므로 이 자비가 미치는 곳에는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이 녹아서 지혜로운 마음으로 변하며, 잔인한 마음이 녹아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변하며, 인색하고 탐내는 마음이 녹아서 혜시하는 마음으로 변하며, 사상(四相)의 차별심이 녹아서 원만한 마음으로 변하여, 그 위력과 광명이 무엇으로 가히 비유할 수 없나니라."(대종경 불지품 2장)고 하셨습니다.

“진심은 감동을 만들고 감동은 기적을 만든다”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늘 자비심을 새롭게 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산종사는 “이 네 가지의 마음이 늘 나날이 새로 살아나고 보면 그 사람은 늘 살아나서 희망이 있는 사람이 될 것이요. 그 교단과 그 세계에서 이 네 가지의 마음이 살아있는 사람이 많이 있을 때에는 그 교단은 항상 산 교단이 될 것이요”라고 법문을 마무리하셨듯이 산 사람, 산 교단, 산 세계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됩시다.

봄은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도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코로나가 주는 교훈을 얻을 것입니다. 봄을 자세히, 오래 보면 봄은 부지런함과 꿈과, 새로움의 메시지를 줄 것입니다. 봄의 산경전을 읽으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기회가 되기를 빕니다.

연속설교의 마무리는 원기33년 첫 예회에 말씀하셨던 정산종사님의 법문으로 하고자 합니다. "만리동춘(萬里同春) 봄이 오지마는, 생기를 아주 잃은 고목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을 것이다. 영산 춘풍 다시 불어 우담발화 먼저 피니 백화 만발할 대기(大氣)의 봄이 멀지 않을 것이다. 큰 봄이 오지마는 생기를 갖지 않은 자에게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리니 생기를 타라. 서원이 생기요, 신성이 생기요, 무상(無相)이 생기니라. 원 없는 이는 고목이요, 신 없는 자는 고목이요, 스스로 포기하는 자는 고목이요, 자만자(自慢者)는 고목이요, 착상자(着相者)는 고목이다. 생기를 타라. 산 사람이 되라. 설리춘풍(雪裏春風)이 오는 봄을 재촉하지 아니하는가."

합장하시겠습니다.

거룩하옵신 법신불사은이시여!

인간의 탐욕과 무지로 인해 인류는 혹독한 고통을 겪고 있나이다.

오늘도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를 알지 못하고 반복되는 고통을 겪고 있나이다.

저희들은 다행히 대종사님을 통해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은혜를 알았기에

오늘도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열어갈 지혜와 꿈을 꿀 수 있음에 감사하나이다.

또한, 이 어려운 난국을 극복해가는 공도자들에게 감사하나이다.

영명하옵신 법신불사은이시여!

대산종사님은 "영겁 다생에 만나기 어려운 이 회상의 동지님들! 나날이 때때로 신근의 뿌리가 더욱 내리고 두터워지도록, 나날이 때때로 공심이 더욱 두루 커지도록, 나날이 때때로 공부심이 더욱 살아나도록, 나날이 때때로 자비심이 더욱 크게 살아나도록,

영겁 다생에 만나기 어려운 이 회상의 동지님들! 다시 법신불과 대종사님과 삼세 제불 제성 전에 대서원을 올리고 대정진을 하며, 대불공을 올려 대불과를 얻으며, 대자유를 얻어 대합력하는 영세의 잊지 못할 동지가 되기를 일심으로 기원하셨으니" 

스승님의 기도가 저희들의 기도가 되게 하시어 새로움으로 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 산 종교, 산 종교인이게 하옵소서.

그리고 빨리 코로나가 소멸되어 세상에, 대한민국에 웃음을 찾게 하옵시고

교당마다 법신불을 찬송하며 마음공부의 정진의 노래가 불려지게 하옵소서.

일심으로 비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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