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교무님, 참회는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는 행위인가요?
(지난 호에 이어) 내가 죄를 지었을 때 상대가 용서해 준다면 그 죄 자체가 사라지는 걸까요? 용서는 상대에 대한 마음의 원한이 사라지는 것이지, 그 죄업 자체가 같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마치 상대방이 나의 물건을 훔쳤다면,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하더라도 법은 그 사람에게 벌을 줘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죄업은 나에게 꼭 돌아옵니다. 그래서 정업(定業)은 부처님도 면하지 못한다 하셨죠.
하지만! ‘깨달음을 얻은 이는 천업(天業)을 돌파한다’라고 하셨어요. 천업을 돌파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면 그렇게 주어지는 업이라도 받는 이는 곧 자신이잖아요. 자신이 마음의 자유를 얻어서 그 죄업을 달게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돈을 빌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갚아야죠? ‘빌리고 안 갚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건 도둑 심보죠.
죄도 지었으면 그 죄업을 당연히 받아야죠! 그런데 우리 중생들은 죄는 지어놓고 죄업이 돌아오면 안 받으려 몸부림치고, 왜 이렇게 날 괴롭히냐고 원망만 합니다. 이건 도둑 심보잖아요. 인과를 무시하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래서 설사 죄업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그 죄업 받는 것을 당연히 알고 그 돌아오는 죄복에 마음이 구애되지 않는 마음을 바로 ‘천업을 돌파했다’라고 표현하신 겁니다. 그리고 참회문에 ‘영원히 참회 개과하는 사람은 능히 상생 상극의 업력을 벗어나서 죄복을 자유로 할 수 있나니, 그러므로 제불조사가 이구 동음으로 참회문을 열어 놓으셨나니라’라고 밝혀주신 거죠.
이렇듯 참회의 원리를 알고 실천하는 것은 인과의 이치를 온전히 실천하는 삶이고, 생활 속에서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이러한 삶은 늘 새 생활이고 선도(善道)일 수밖에 없습니다.
5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