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가 약이다 Walking is med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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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가 약이다 Walking is medication
  • 김현오 교무
  • 승인 2020.07.01 02:20
  • 호수 11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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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시대의 영성6

대개 명상가와 철학자들 사이에 공통된 습관 하나가 있다고 한다. 규칙적으로 걷는 습관, 산책하는 습관이다. 규칙적인 걷기가 반드시 명상의 특정 상태나 위대한 사유의 지적 근육을 단련시켜 준다고는 확언할 수 없다. 하지만 걷기가 인체의 소화계, 순환계의 원활한 작용을 도울 뿐 아니라, 우리 몸의 전반적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은 이제 건강상식이 됐다. 나아가 ‘햇볕 쬐며 걷기’는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부정적 감정을 치유하는 데 효과적이고, 중심과 균형, 그리고 조화롭고 건강한 감정생활에 효과가 커서 전문가의 우울증 치유법으로 추천되고 있다.

그러면 걷기나 산책을 하나의 수행으로, 매일 또는 규칙적으로 지켜온 명상가나 철학가들은 어떤 효험을 경험하며 심화된 삶으로 나아갔을까? 필자의 경우, 홀로 산책 중에 또는 산책을 마치고 난 후, 심신의 청량한 흐름이 지속될 때가 있다. 그때 난데없이 찾아오는 영감, 보다 생생하고 충만해진 느낌, 보다 완전해진 기분, 때로는 의두의 실마리가 잡히는 경험을 하곤 한다. 걷기나 산책이 신체 활력과 정서적 조화로움을 불러옴은 물론이고 현존에 머물게 하고, 순수와 창의성 같은 보다 높은 정신적 기능의 활성화에 물리적으로 연동돼 있음을 확인한다.

동물들은 크고 작은 ‘뇌’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몸의 체중에 비해 뇌의 무게가 가장 큰 동물은 단연 사람이다. 사람은 왜 몸무게에 비해 이렇게나 큰 뇌를 가지게 됐을까? 860억 내지 1000억 개 정도의 뇌신경 세포를 먹여 살리느라 우리 몸은 전체 영양과 에너지의 25%를 뇌에 할애한다. 진화생물학자들이 말하기를 동물들은 직접 먹이를 찾아 나서야 했고, 짝을 찾아 움직여 나가야 했기에 뇌가 필요했다고 한다. 걷기라는 움직임은 동물들의 생존 여행의 시작이었지만, 인간은 생존이라는 1차적 목적에 머물지 않고, 창조하는 뇌, 예술하는 뇌, 철학하는 뇌, 깨달음의 뇌로 경이롭게 진화해 왔다. 여기까지 오는데 우리 조상들은 태양 아래 숲속이나 강가, 길, 뜨거운 사막, 추운 벌판에서 오늘날 우리들보다 훨씬 더 많이 걸었다.
 


사람들이 쉽게 놓치고 사는 ‘호흡이라는 생명활동’을 깊이 관찰하여 의식영역으로 들여놔 보자. 그 속에서 생명의 규칙과 기본단위를 발견하고 무한한 묘유의 조화를 몸 안에서 구현한 도인들을 생각해보자. 호흡과 마찬가지로 걷기는 그 어떤 움직임보다도 오래 지속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 리듬과 율동이 가능한 신체활동이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서 자각하지 못하지만, 인체가 균형 있게 바로 서는 것 또한 경이로움 중의 으뜸이다. 크고 작은 보폭, 빠르고 느린 걸음 등 다양한 걷기와 방법에 따라 호흡의 장단, 깊이, 결이 달라진다. 달라진 호흡의 성질에 따라, 신체적 효과, 정서적 효과, 안정감, 여유, 해방감, 내적 현존의 힘,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의 의식적 조절력 등이 변화한다.

물리적으로도 우리 인체의 하반신 근육은 전신 근육의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걸을 때는 하체의 근육이 함께 움직이면서 그 움직임의 탄력으로 피를 위로 잘 끌어올려 뇌혈류량이 증가하고 뇌기능이 확대된다고 한다. 규칙적인 걷기 수행은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영적 진화의 삶에 훌륭한 (물리적)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법을 구해 몇 달 혹은 몇 년씩 황야를, 사막을, 목숨 걸고 걸었던 옛 구법승들의 여정을 그려보자. 그들은 목적지에 당도하기도 전에 떠날 때 얻고자 했던 바를 이미 다 얻었을 수도 있다. 애초에 구할 것도, 얻을 것도 없었던 그런 엄연한 존재감을 두 발의 춤으로 이어갔는지도 모른다.

걷기는 수행이다. 걷기가 약이다.

과학시대의 영성
김현오 교무
미주동부교구 보스턴 교당

 

 

7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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