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경계를 대하되 부동함은 태산과 같이, 무시선법③
상태바
천만 경계를 대하되 부동함은 태산과 같이, 무시선법③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0.07.08 09:34
  • 호수 117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우의 공즉시색23

“밖으로 천만 경계를 대하되 부동함은 태산과 같이 하고.”

여기서부터는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위 구절을 설명하기 전에 우선 ‘경계에 부동(不動)한다’는 말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공부인들이 이 말을 경계에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다거나, 눈앞의 경계에 대해서 마음이 무감각해진다거나, 또는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경계를 벗어남으로써 그 마음이 부동해지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경계에 부동한다는 의미를, 일체를 다 내려놓음으로써 온갖 시비선악 장단에도 매이지 않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어서 희로애락을 모두 초월한 것으로 잘못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마음이 텅 비어 맑으면서도 두렷하여, 육근 경계에 다 일일이 대응하고, 모든 지각이 생생하게 살아서 대상의 시비선악 장단을 다 구별하되, 이들 경계에 전혀 마음이 끌려 동(動)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경계에 마음이 동하지 않기로만 한다면,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를테면, 자기가 마주하고 있는 경계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면(가령 마음에 안 찬다든지 하여) 아무리 좋다는 경계라도 마음이 동하지 않습니다. 또 마음이 지금 다른 데에 가 있으면, 비록 대상과 접하고 있더라도 마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진짜 경계에 부동한 것이 아니지요. 아직 동할 만한 조건이 아니어서 그럴 뿐, 언제든 상황이 바뀌면 바로 마음이 동하게 됩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평소 손을 씻을 때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에 마음이 동합니까? 자주 먹는 음식이나 입고 있는 옷, 갖고 다니는 물건에 대해서 마음이 동합니까? 횡단보도에서 마주 오는 행인들의 모습에 마음이 동합니까? 거리에서 지나가는 차들의 소음에 마음이 동합니까?

위와 같은 경우도 우리는 거의 마음이 동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주하는 대상에게 좋다거나 싫다는 마음이 없어서, 그것에 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그저 무의식적으로 마음이 동하지 않은 것일 뿐, 의식이 활짝 깨어있는 상태로 경계에 부동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에 내 마음이 부동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경계와 똑바로 마주해서 그 대상을 밝고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혜로써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과 더럽고 깨끗함을 모두 잘 구별하면서도, 그것들에 집착하여 끌려가지 않아야 합니다.

무시선법에서 부동하라는 것은 이렇게 마음이 성성하게 깨어서, 모든 지각이 온전하게 작용하는 가운데 경계에 동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내가 경계에 끌리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무시선이 아니며, 진짜 중요한 것은 경계와 마주한 상태에서 안으로 나의 마음이 어떠한가에 있습니다.

대상을 보거나 듣고 있을 때, 무슨 일을 하거나 생각하고 있을 때, 안팎으로 마음이 투명하게 깨어 있습니까? 육근 경계를 또렷하고 밝게 구분하면서도 아무런 끌려감이 없이 마음이 고요합니까? 밖으로 천만 경계에 태산과 같이 부동하라는 것은 곧 위와 같이 마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나우의 공즉시색라도현 교도화정교당
나우의 공즉시색
라도현
화정교당 교도

 

7월 10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