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의 향기] 자연의 결따라, 조촐하고 평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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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향기] 자연의 결따라, 조촐하고 평화롭게
  • 우형옥 기자
  • 승인 2020.08.04 14:13
  • 호수 11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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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향기 / 김포교당 유진경 소목장
김포교당 유진경(법명 혜원) 소목장
김포교당 유진경(법명 혜원) 소목장

[한울안신문=우형옥] 지난 6월 5주간 열렸던 원에코(won-eco) 기후학교에서 매시간 앞자리에 앉아 동그란 안경을 번쩍이며 수업을 들었던 이가 있다. 그는 종강 날 아이들에게 물려 줄 것이 없으니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고 싶다며 천지보은 실천약속으로 “나무를 쓰는 만큼 다시 나무를 심겠다”고 말해 많은 수강생들에게 기억됐다. 그는 사실 전통가구를 수련한 전국의 30여 명밖에 없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이수자였다.

새벽 비에 유난히 나무 내음이 진하던 날, 유진경(59·법명 혜원, 김포교당) 소목장을 찾아갔다.

손의 기억을 이어받은 사람
그는 조선 시대 때부터 사용한 다섯 가지 기법으로 가구와 소품을 만든다. 전통기법으로 작업을 하는 그는 자신을 ‘손의 기억을 이어받은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어렸을 때부터 이 일을 시작했을 것 같지만, 20년 전 그는 평범한 주부였다. 일찍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한 그는 힘들 때면 천을 떼다가 손바느질을 하기도 하고, 등공예, 도자 등 손을 움직이며 마음을 달랬다. IMF로 힘들었던 시절, 산책하다 우연히 목공방을 발견했고 그렇게 시작한 목공도 그냥 취미 중 하나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샌가 우연자연 목수의 길에 들어서 있었다.

“창업 후 일이 별로 없었어요. 새로운 걸 배우고 싶었는데때마침 회사 바로 옆에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가 소목반 수업을 모집 중인 거예요. 선착순에 떨어져서 꼬박 1년을 기다려 들어갔죠. 작은 함을 하나 만드는데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느리지만 단단한, 그게 저에게는 엄청난 매력이었죠.”

사람들은 그가 목공의 길에 들어선 걸 운명이라고 했지만, 그는 그저 우연이라며 아마 창업했던 일이 잘됐으면 여기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우연을 필연으로 또 운명처럼 만든 건 그의 노력이다. 소목장 이수부터 2014년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증 취득, 현재는 한국의 전통 바둑판을 복원하는 유일한 목수에 이르렀다. 그가 처음 복원했던 바둑판은 프랑크푸르트 응용 미술 박물관에 영구 소장되기도 했다.

번뇌 망상이 사라지는 시간
그는 결혼을 하며 시어머니의 권유로 원불교에 입교했다. 입교한 지 얼마 안 돼서 친아버지가 돌아가셨고 49재를 지내는 동안 일원상서원문과 반야심경을 안 보고도 외우게 됐다. 그러나 뜻을 몰랐다. 그는 불현듯 불법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 년 전부터 소설책을 읽듯 불경을 읽고 교전을 읽고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통해 공부하고 있다.

“온갖 사람들의 불경 강의를 듣다가 느낀 건데 정말 우리 대종사님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절에 무지몽매한 중생을 위해 이 어려운 불경을 너무나 쉽게 풀어내셨어요. 정말 대단하죠.”

불법이 삶의 가치관과 기준이 되면서 걱정이 많던 성격도 유무념 대조를 하며 변하고, 작업을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심고를 올린다. 자녀들에게도 좋은 법문을 보면 문자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매일 명상을 한다.

“대종사님이 밝힌 무시선 무처선 공부를 저는 목공으로 합니다. 나무 먼지는 막 일어나지만 제 사념, 번뇌 망상은 사악- 가라앉죠. 저는 매일 목공 명상을 합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
그는 누레진 흰옷을 다시 삶아 염색을 해 구멍이 나 헤질 때까지 입고 다니고, 식사는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 조촐하게 먹는다. 장바구니,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은 기본, 최대한 버리지 않는 삶을 산다. 원불교환경연대의 원에코 기후학교는 그가 살아가는 방식에 확신을 들게 했다. 그는 지구 인구가 70억이면, 지구를 위해 70억분의 1의 역할은 하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천천히 느리게 산다는 것. 전통목공은 슬로우 라이프의 대표적인 방법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전통기법이 바로 오동나무의 표면을 인두로 지지는 ‘낙동법’인데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따라서 만들었어요. 낙동법 뿐만 아니라 짜임기법이라던가 면분할기법, 대칭기법 등 대표적인 기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을 따르고 사계절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방법들이죠. 만드는 과정도 모두 친환경적이에요. 사람한테 나쁜 건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이것을 깊이 알고 나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금 이대로, 건강하게, 죽음의 직전에 이르기까지 조촐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어요.”

군더더기 없이 청초한 그의 작업은 아마도 이런 그의 심성이 묻어난 것일까? 이 일이 두루 사람에게 이익되기를, 이 일이 두루 지구에 이익되기를. 그는 오늘도 조촐하고 평화롭게 살아간다.

 

8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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