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즉시색] 진세에 처하되 백천삼매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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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즉시색] 진세에 처하되 백천삼매를 얻는다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0.11.09 19:36
  • 호수 11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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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의 공즉시색31
라도현 교도
화정교당

「사람이 만일 오래오래 선을 계속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마음의 자유를 얻은즉, 철주(鐵柱)의 중심이 되고 석벽(石壁)의 외면이 되어, 부귀영화도 능히 그 마음을 달래어 가지 못하고, 무기와 권세로도 능히 그 마음을 굽히지 못하며….」

이제부터는 무시선법의 수행 공덕에 관한 내용입니다. 무시선법을 계속 닦아서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결과들입니다. 무명에 덮인 중생의 삶을 벗어나 완전한 지혜와 해탈을 얻는다는 내용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모든 번뇌를 끊고’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공부인들이 자칫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불교에선 마음에 일체의 망상과 분별주착이 없게 하는 것을 가리켜 ‘번뇌를 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래 망상이나 분별주착이란 어디에서 나는[生]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번뇌를 끊는다는 말은 사실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번뇌는 중생의 분별망상으로서, 이것은 실은 우리 성품의 지혜와 한몸[一體]입니다. 즉 번뇌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경계에 끌려 주착함으로써 본래성품의 지혜광명이 번뇌라는 옷을 입고 나타난 것입니다. 즉 번뇌의 본질은 반야(공적영지)의 성품으로서, 그 본체가 텅 비고 고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경계에 주착함으로써 제 본성의 공적영지가 변질(굴절)되어서 번뇌라는 형태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아무 데도 머물지 않으면 번뇌 자체가 스스로 공적영지입니다.

이처럼 번뇌와 반야는 둘이 아니기 때문에, 번뇌를 만약 ‘끊는다’고 하면 공적영지도 또한 없게 되는 것입니다. 흔한 예로, 단전주선을 하면서 만약 무기(無記)에 들게 되면, 모든 번뇌가 끊어지는데, 이때는 자성의 지혜광명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그러므로 선종에서는 비록 망상을 할지언정 무기에는 빠지지 말라고 합니다. 망상이 문득 쉬면 곧 성품의 지혜광명을 나투지만, 무기는 영영 어둠을 벗어날 기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행자가 참으로 고요하게 깨어서 그 마음이 아무데도 머물지 않으면, 번뇌가 스스로 공적영지로서 안팎이 두렷하고 밝은데, 이때가 일체의 속박을 여읜 지혜와 해탈의 순간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그 어떤 경계에도 끌려가 동하지 않으므로, 철주의 중심이 되고 석벽의 외면이라 했습니다. 또 이 마음은 머무는 곳이 없기에 모든 애착과 두려움을 벗어나서, 부귀영화로도 유혹하지 못하고 무기와 권세로도 굴복시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 어떤 유위(有爲)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할지라도 결코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일체 법을 행하되 걸리고 막히는 바가 없고’

이러한 마음은 일체의 행위를 하는 데에 자유자재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행위는 공적영지가 바로 행동으로 나투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경계에서도 전혀 흔들리거나 머뭇거림이 없습니다. 이 지혜는 일체의 상대적(相對的) 분별을 뛰어넘어 그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습니다.

‘진세(塵世)에 처하되 항상 백천삼매를 얻을지라’.

이 경지는 비록 삼독오욕(三毒五慾)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할지라도 오롯한 선정삼매를 떠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백천삼매는 일상삼매(一相三昧), 일행삼매(一行三昧)와 같아서, 성품의 공원정(空圓正)을 떠나지 않는 채로 모든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동정간(動靜間) 모든 것이 부처의 마음이고 부처의 행위입니다.

-무시선법 11-

11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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