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의 공즉시색] 시비선악과 염정제법이 다 '제호의 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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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의 공즉시색] 시비선악과 염정제법이 다 '제호의 일미'
  • 라도현 교도
  • 승인 2020.11.17 15:57
  • 호수 11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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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의 공즉시색32
무시선법12
라도현 교도
화정교당

「이 지경에 이른즉 진대지(盡大地)가 일진법계(一眞法界)로 화하여, 시비선악과 염정제법(染淨諸法)이 다 제호(醍)의 일미(一味)를 이루리니」

무시선법을 오래오래 닦아서 온전한 공원정의 성품을 떠나지 않으면, 일체의 행위에서 전혀 걸리고 막힘이 없고, 삼독오욕(三毒五慾)의 티끌 세상에서 늘 일상삼매(一相三昧)를 얻으며, 이 경지가 되면 온 세상이 참다운 법계로 화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또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현실의 오탁악세(五濁惡世)가 일진법계로 변화하는 게 아니라, 이 세계는 원래부터 참다운 법계이며, 진세(티끌 세상)라고 하는 것은 상대(相對)를 짓고 분별하는 마음이 지어낸 상(相)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사실은 정확하게 말하면, 본디 이 세상은 더러운 티끌 세상도 아니고 깨끗한 참 법계도 아닙니다. 두 세계가 모두 분별하고 주착하는 한마음이 지어낸 이름이고 허상일 뿐입니다. 티끌 세상이라는 것도 착각이요, 참 법계라는 것도 환(幻)입니다. 미혹된 마음이 참과 거짓이라는 두 가지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어느 경전에 “싫어서 없애려고 하면 풀 아닌 게 없고, 좋아서 취하려고 하면 모두가 꽃이더라 (惡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는 말씀이 있는데, 풀이라 하든 꽃이라 하든, 결국은 하나의 식물에 두 가지 명칭을 붙여놓고 좋아하거나 또는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물론 그 대상(경계)에 원인이 있지 않고 바로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진세로 여기는 것도, 또는 일진법계라고 보는 것도 모두가 마음이 만들어낸 생각이며 한 조각 분별 망상일 뿐입니다. 결코 우리의 본성 가운데는 이렇게 참됨과 거짓, 깨끗하고 더러움, 귀하고 천한 세계가 따로 펼쳐져 있지 않습니다.

일체를 다 부처로 보려고 한다면 마음속에 ‘중생’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도 함께 버려야 합니다. 마음에 부처를 좋아하는 생각을 가지면 중생을 싫어하는 생각이 또한 생길 수밖에 없으니, 부처와 중생을 다 놓아버려야 보이는 것마다 부처입니다. 부처와 중생이란 말하자면, 다 같이 미혹된 마음에서 나온 분별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더럽다는 한 생각이 ‘법계’라는 깨끗한 이미지를 또한 만들어 낸 것이지, 애초부터 진세도 법계도 오직 이름일 뿐이며 한 마음이 일으킨 상(相)입니다.

이렇듯 마음 가운데 더럽다는 것도, 깨끗하다는 것도, 거짓이라는 이미지도, 참되다는 이미지도 완전히 다 사라지면, 시비선악과 일체의 더럽고 깨끗한 것들[染淨諸法]이 모두 제호(醍)의 일미(一味)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제각각 그 자체로서 최고 최상의 지극한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종에서는 이것을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열반상을 나투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야말로 모두가 구경(究竟)이어서 더 이상 보탤 것도, 뺄 것도, 고칠 것도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오직 수행을 통해서 마음으로 증득해야 합니다.

다만 이 같은 경지가 그저 환상이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수가 있으니, 사족으로 몇 마디를 해 보자면 - 이 세상의 밝고 어두운 면면들은, 본디 완전한 부처인 저마다의 존재가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원리에 따라 나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사물, 하나의 현상이라도 진리, 즉 근본 도리를 거슬러서 존재할 수가 없으며, 또한 지극한 자리를 떠나있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도, 선도 악도, 귀하고 천함도, 깨끗함도 더러움도 그래서 다 진리부처[법신불]의 화현(化現)인 것으로, 진세(塵世)를 떠나서 따로 참 법계를 얻을 수가 없으며, 중생의 번뇌를 떠나 달리 부처의 위 없는 지혜[보리]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시선법 12-

11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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