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광복이 되자 일본인 승려들은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자신들의 사찰을 관리해줄 적임자들을 물색했다. 남산에 있는 약초관음사는 불법연구회에서 맡아주길 원해서 원기31년(1946) 2월에 약초관음사를 인수한다. 주지가 일본으로 떠나자 경성지부 이동진화 교무, 황정신행, 이성신과 송도성 부소장은 이곳으로 이사 와서 ‘전재구호소’란 간판을 건다. 교단에서는 약초관음사를 정각사(正覺寺)로 이름을 바꾸고, 법당에 모셔진 관음상 좌우에 소태산 대종사 영정(현 원불교역사박물관 소장)과 연꽃 문양 일원상을 모셨다.
광복 후 살기가 힘드니 곳곳에 도둑들이 많았다. 정각사에도 도둑이 들어 시계, 안경, 옷 등 무엇이든지 다 가져가 버렸다. 도둑이 자주 들어서 사람까지 위험해지자 정각사를 내놓자는 의견이 있을 정도였다. 양주에서 요양을 하던 김대거가 부임하여 정각사를 지킬 때, 낮에는 방문을 모두 열어 놓고 사람들에게 정각사 내부를 들여다보게 했더니, 쓸만 한 것이 없음을 알고 그다음부터 도둑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헌신적으로 구호사업에 앞장섰던 송도성은 전재동포구호사업 정리 단계에서 발진티푸스에 감염돼 원기31년 3월 27일 40세의 젊은 나이에 순직하게 된다. 경성출장소 초대교무와 경성구호사업으로 경성과 인연이 깊었던 송도성의 열반은 특히 경성교도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총부와 경성 간 연락을 원활히 하고 경성지역 업무를 위해 정각사에 ‘서울출장소’를 설치하고 김대거가 출장소 소장에 임명된다. 경성지부 돈암동 회관도 원기31년 2월에 돈암동에 있던 회관을 매각하고 정각사로 이사를 한다.
광복과 함께 귀국했던 동포들 중 전염병과 질병으로 죽는 이들이 많아지며 고아들도 늘어난다. 이 고아들은 세브란스병원과 황정신행의 동대문부인병원을 거쳐 정각사로 옮겨와서 정각사는 전재구호소를 ‘서울보화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서울출장소와 같이 생활하게 된다. 서울보화원 원장은 황정신행이 맡고, 광복 후 남하한 개성지부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보화원 일을 도왔다. 훗날 한국전쟁을 겪으며 원아들은 총부로 이송되어 이리보육원 등에 나눠 있다가 원기52년 한국보육원(양주)에 자리를 잡게 된다.
황정신행의 인연으로 이승만, 김구, 조병옥, 이시영, 김창숙, 김성수 등 정치지도자들이 남산 서울출장소에 찾아와서 모임을 자주 했다. 특히 김구는 생각을 정리할 일이 있거나, 시간상 여유가 있을 때 찾아와 김대거 소장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쉬고 가기도 했다.
정각사는 한국전쟁 당시 국방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징발(徵發)조치 당했고, 전쟁 후에는 남산공원으로 편입되었으며, 미8군 사령부에 일부가 강제 징발되게 된다. 원불교에서는 진정서를 각계에 제출하는 등 불하운동을 끈질기게 전개하여 결국 원기46년에 가옥과 대지, 임야 12000평을 재단법인 원불교로 완전히 이전등기하게 된다.
이공주는 정각사 불하받는 것을 자신의 필생사업으로 여기고, 불하대금 등 모든 경비를 사재로 담당했다. 원기46년 정각사에 ‘서울수도원’을 설립하고 이공주가 원장에 임명되었으나 여러 장애로 수도원의 건립은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 후 원광 중·고등학교와 서울회관 건축이 경제적 위기에 처했을 때, 서울수도원 일부인 3,500평을 매각하여 위기를 넘기게 된다. 오늘날 정각사의 옛터는 원불교 예술인 교당에서 남산 예술원 예식장으로 변화돼 원불교인의 출입이 엄하게 통제되고 있으니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이공주 선진께서 필생의 사업으로 여기고 6년의 끈질긴 노력 끝에 불하받은 정각사인데, 출입도 자유로이 할 수 없는 곳이 되었으니, 훗날 스승님을 만나 뵐 면목이 없다.
글_박혜현·정릉교당 교도·서울원문화해설단 부단장
1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