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물정 모르는 마을식당 ‘밥·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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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 모르는 마을식당 ‘밥·풀·꽃’
  • 소란(유희정)
  • 승인 2021.02.03 18:31
  • 호수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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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전환이다2

 

오늘도 먹어야 사는 인간은 장을 보러 간다. 유기농, 혹은 무농약이라고 쓰여진 먹거리는 거의 찾기가 힘들다. 마트는 온통 농약과 화학비료가 정상인 세상이고 무농약, 무향균제, 유기농은 마치 정상이 아닌 듯 별도표시를 한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먹거리에 유해 성분인 농약과 자연을 파괴하는 화학비료를 주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정상인 듯 표시조차 없다.

농약의 유해성에도 불구하고 먹거리는 벌레 하나 먹지 않은 말끔한 모양과 포장으로 인간을 유혹하면서도 진실은 숨겨진 채로 오늘도 밥상에 오른다. 석유로 농사짓는 대량생산의 농업체계에서는 싼 먹거리를 먹고 싼 임금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밥상 위는 이미 자본의 식민지다. 돈의 얼굴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마트였다면 무농약과 유기농에 표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유농약, 유화학비료라고 표시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이 당연함이 돈이라는 얼굴을 하면 당연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세상물정 모른다는 소리를 듣는 식당이 있다. 전환마을은평이 서울의 은평구에서 5년째 하고 있는 유기농, 로컬푸드, 채식식당 ‘밥풀꽃’이다. 

밥풀꽃에서는 유기농 표시가 필요 없다. 모든 메뉴가 유기농이다. 사실 채집과 퍼머컬처 농사를 통해서 온 먹거리까지 포함하면 유기농을 넘어 자연농에 가까운 먹거리를 기본재료로 쓰고 있고 심지어 서울 한복판에서 로컬푸드를 실현하고 있다. 밥상에 오르는 재료만 보고도 수락산 퍼머컬처 공동체에서 온 먹거리인지, 밥풀꽃 농장에서 온 먹거리인지 어느 도시농부님의 먹거리인지 알 수 있다. 밥상을 받으면 이 밥상의 농산물을 재배한 농부의 얼굴이 떠오른다. 겨울이라 직접 키우지 못한 재료는 동네의 두레생협에서 구입한다. 2019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밥풀꽃은 로컬푸드를 넘어 완전 채식식당으로 전환했다. 고기를 먹으며 숲을 파괴하고 탄소 배출을 늘려 기후위기를 가속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홍대도 아니고 은평구의 동네골목에서 채식식당을 운영하고 심지어 유기농을 파는 식당을 하면 유지가 되느냐고 묻는다. 어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망하진 않고 5년여를 한자리에서 지키고 있다. 66.1㎡ 남짓 식당에서 현재는 5명의 동네 요리사가 일하고 있고 마을의 많은 교육과 모임들도 열린다.

밥풀꽃은 밥만 파는 식당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삶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다. 밥풀꽃은 매주 두 번 도시락 배달도 하고 있다. 은평구에 사는 어르신들이나, 몸이 아프거나 직접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분들에게 식사뿐만이 아니라 안부와 건강도 묻는다. 직접 배달하다 보면 차츰 관계가 형성되면서 손님이 아니라 이웃이 된다. 재배부터 요리까지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배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뢰가 생기고, 돌봄이 필요한 일들을 알게 되면 마을에서 함께 도울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기도 한다. 다만 맘 약한 밥풀꽃의 요리사들이 사정을 듣고는 재료비를 계산하지 못하고 퍼주게 되는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LG타워에서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들에게 도시락 배달 주문이 왔을 때 재료비를 모금 해서 배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금액보다 더 많은 재료비를 쓴 요리사들의 정성은 덤이다.

 

밥풀꽃은 이런 세상 물정 모르는 장사를 매번 하는데도 어쨌든 망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밥풀꽃은 장사를 하면 할수록 돈은 손해를 보지만 관계라는 선물을 매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본주의 눈으로 보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장사인데 우리는 이 어설픈 경제관을 선물경제라고 부른다. 인간은 돈만을 위해 노동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밥풀꽃의 밥은 오늘 내 배를 불려주기도 하지만 타인의 배를 불려주기도 하고 자연에 해를 입히지 않는 농부를 지원하기도 한다. 밥이기에 세상물정을 모르기는커녕 세상의 건강한 인과를 만드는 선물이 되는 밥이다.

오늘도 한 손님이 자신이 먹은 밥값 외에 다음 손님의 밥값을 지불하고 간다. 다음 손님은 생면부지의 사람으로부터 온 기쁨을 누리고 또 그 기쁨을 다음 분에게 유효시킨다. 이렇게 밥값 릴레이가 진행되면서 오늘도 손님들은 기쁘게 마을에서 선물경제를 누리고 배운다.

 

소란(유희정)<br>전환마을은평 대표<br>퍼머컬처
소란(유희정)
전환마을은평 대표
퍼머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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